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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사고 글을 쓰고 사랑하라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26)

by 김세인

교양 삼아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주어진 주제 없이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썼다. 처음에는 A4 용지 한 장도 채우기 어려웠다. 내 일상과 가족, 관심사에 대해 썼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주변 사람들 이야기까지 탈탈 털고 나니 글감이 떨어졌다. 어느 날 문득 내 일상에 주식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내가 주식을 사고팔며 느꼈던 감정과 주식시장을 바라보며 들었던 여러 생각들에 대해 적었다.


내가 주식에 대한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재미로 한 번 써봤을 뿐이다.


“지금까지 쓴 글 중에 제일 재미있는데요? 몇 편 더 써보세요.”

“네? 설마요. 저 정말 일기처럼 썼는데.”


선생님과 글쓰기 모임 회원들의 반응에 당황했다. 쓸만한 소재가 없어 별생각 없이 쓴 글이었다. 비록 작가 지망생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쓴 글이 그렇게 엉망이었나 생각도 들었다. 논문을 찾고, EBS 다큐를 뒤지며 힘겹게 쓴 글은 오히려 혹평을 받을 때도 많았다. 그러고 보니 교육에 대해 쓸 때는 교육부 장관이 된 듯 심각했던 내가 주식에 대해 쓰는 동안에는 혼자 킥킥대며 재미있어했다.


그날 이후로 내가 쓰는 글의 소재는 주식이 되었다. 애널리스트만 주식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단지 전문적인 견해가 아닌 평범한 한 투자자의 경험을. 경제용어가 아닌 일상용어로.




주식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바라볼 기회를 얻었다. 내가 주식을 사고파는 모습, 전전긍긍하는 꼴이 만화 속 인물처럼 그려졌다. 주식을 거래하는 나와 거리를 두면서 지구본을 돌리듯 360도로 돌리며 다각도로 보려고 애써봤다. 가관이었다.

주식으로 많은 돈을 벌려는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급등하는 종목을 보면 배가 아팠다. 주식과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산 종목이 오를 때면 다 아는 사람 마냥 거만을 떨었다. 기업의 재무제표는 공부하면서 우리 집 가계부 보는 일은 소홀히 했다. 나는 비교적 차분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유독 증권사 앱을 열면 이상한 오기가 발동했다.


흥분, 오기, 불안, 혼란, 거만, 후회... 내가 느꼈던 온갖 감정의 동요에 대해 적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고 나니 주식을 향한 나의 태도가 보였다. 원칙 없이 주식시장에 끌려가고 있는 나를 보았고 원칙을 세워도 흔들리는 나를 보았다.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주식이라는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의 모습과 태도가 변화하도록 쓰고 또 썼다.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듯한 행동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적었다. 생각하는 것을 글로 적는 일은 또 달랐다.


글로 쓰다 보니 간단한 문장이나 용어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경제용어를 공부하게 되고 개념도 내 머릿속에서 더 명확해지도록 이해했다. 지식 없이 지혜를 찾기는 어렵다. 요즘 신문에 매일 나오는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이라는 용어를 모르고 신문을 보는 것은 영어단어를 모르고 영어책을 보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부의 시나리오』의 저자는 어떻게 경제공부를 했냐는 질문에 스스로 읽고 쓰는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답했다. 신문에서 읽는 경제에 관련된 내용들을 요약하고 기록해서 주변 지인들에게 매일 보내고 SNS에 올린 것이다. 그는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쓰게 되면 뇌리에 더 강렬하게 인식된다고 말했다.


나 또한 쓰면서 예전 같으면 지나쳐버렸을 경제 용어나 개념에 대해서도 관심의 폭을 넓히게 되었다. 읽을 때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 내 문장으로 쓰면서 명료하고 선명해졌다. 그동안 씹어먹지 않고 급히 먹었던 지식을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문장 간의 논리를 따지면서 투자와 근거 사이의 논리도 생각하게 되었다. ‘카더라’에 현혹되지 않고 좀 더 꼼꼼하게 투자를 결정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주식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가 수확한 가장 큰 재산은 ‘철학’을 가진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경제적 인간으로서 행하는 태도와 판단, 선택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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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부자의 집에 서재를 둘러본 적이 있다. 『화폐전쟁』이 눈에 띄었다.


“경제 관련 책들 중에 투자에 도움 되는 책 있으면 추천 좀 해주세요.”

“음.. 나는 투자서보다는 오히려 철학책을 추천해요.”


철학책을 추천한다는 그의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한참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투자로 많은 수익을 거둔 것은 운이 좋아서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대화하는 동안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이 느껴졌다. 단호함과 유연함이 공존했다.


그가 말한 역발상은 대부분의 투자서에 성공하는 투자자의 소양으로 적혀있다. 마무리는 자신만의 철학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역발상의 길로 갈 수 있는지는 찾기 어렵다.


주식 시장을 들락거리며 누가 나에게 무엇을 얼마나 언제 사고 팔지 알려주길 바라는 유혹을 자주 이겨내야 했다.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논리적 판단의 근거로 삼지 않고 주가의 흐름으로 연결 지었다. 유튜버가 재무제표를 분석해주고 이 종목을 사도 된다 팔아야 한다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AI 투자 로봇이 포트폴리오를 짜고 수익이 나면 알아서 파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 내 삶에 얼만큼 그리고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결정하는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내 정신 건강을 해치는 돈과 투자는 가까이 하지 않으리라 경계를 지었다. 이것이 글을 쓰며 내가 찾은 제1의 철학이다.




내가 주식으로 얻은 건 수익률뿐만이 아니었다. 힘을 빼고 글을 쓴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주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돈을 둘러싼 나의 원칙과 철학을 다져가는 계기가 되었다, 단지 투자로 돈을 얼만큼 벌 것인가 보다 내 인생에 투자는 어떤 방식으로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먼 훗날 돌아보면 ‘주식’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주식하는 ‘나’ 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통찰과 변화가 나에게 남는 재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투자서를 봐도, 투자 영웅의 이야기를 들어도, 아침저녁으로 방송을 섭렵해도 허기가 지는 건 주식시장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추구하는 바가 허기졌던 것이다. 펜을 들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나는 몸부림쳤다.


그렇게 나는 주식을 사고 글을 쓰고 이 둘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인생에 또 다른 중요한 일을 할 때도 그 몸부림을 기억할 것 같다.


“좋은 철학은 좋은 전구처럼 방 안을 환히 밝힌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113p.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쓸 수 있길 바란다.

제2의, 3의 철학을 찾을 때까지. 환하게까진 아니어도 전구가 꺼지지 않게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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