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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는 아무나 하나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라이프 (23)

by 김세인

7년 만에 이사를 했다. 묵은 짐들을 버렸다. 식탁, 아이들 장난감, 책장, 침대 프레임, 서랍 속 옷들... 낡고 흠집 난 가구와 물건들을 과감히 버렸다. 새집에 가면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최소한의 가구만 놓은 깔끔하고 정갈한 거실을 상상했다.


평수를 넓힌 새 집에 짐들을 풀었다. 소파 없이 살아볼까 생각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침실에 있는 온갖 베개를 가져와 거실 바닥에서 뒹굴었다. 침실로 베개를 갖다 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소파를 주문했다.


마루 색깔이 밝아 얼룩이나 먼지가 잘 보였다. 거실에 있던 무선 청소기보다 흡입력이 강한 유선 진공청소기를 주문했다. 가지고 있던 스팀 청소기는 한 번 쓰려면 깔때기에 물을 넣어 스팀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무선 물걸레 청소기를 주문했다.


바닥의 끈적거림에 예민한 남편은 부직포와 막대 밀걸레를 추가로 구매했다. 이러다가는 청소하다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자 로봇 청소기가 떠올랐다. 요즘 핫하다는 샤오미와 LG 로봇 청소기를 검색했다. 그렇게 청소기를 하나씩 주문했다. 거실에 물건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늘 말했다.

“없는 게 인테리어다.”

엄마가 집을 팔 때면 친정집을 돌아본 사람들은 모델하우스 같다고들 했다. 주방 아일랜드 식탁에 엄마는 스킨다비스 화분 외에는 잡다한 물건을 허용하지 않았다.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을 들이는 일은 질색했다. 엄마는 주식 바구니에도 ‘삼성전자’만 사서 넣었다. 참, 삼성전자 우선주까지 딱 두 개 종목이었다.


처음엔 엄마의 그런 단순하고 간결한 주식 투자를 동경하지 않았다. 나는 젊은 세대니까 수천 만개의 정보를 수집해서 세련되게 투자하고 싶었다. 다양하고 화려하게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포트폴리오는 그렇게 기획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힘들 뿐. 트레이더나 펀드 매니저가 아닌 평범한 개인 투자자인 나는 주식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을 수 없었다. 주식도 이삿짐처럼 정리가 필요했다.




무지와 ‘가즈아’ 정신으로 무장한 단순함은 미니멀 주식 라이프가 아니다. 최소한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서 최대한의 돈을 끌어모으겠다는 심산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 주식 라이프는 주식의 가치 외에는 거리를 두는 것이다.


‘미니멀 주식 라이프’를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는 주식 바구니에 10개 이상의 종목을 담지 않는 것이다. 많다고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다. 많으면 복잡해지기도 한다. 종목이 많다고 수익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 세일하는 물건을 사듯 이건 주가가 싸다고 사고 저건 전망이 좋다고 샀다가 나중에 당근 마켓에 싸게 내놓은 적도 많다.


종목 하나만도 제대로 파악하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확인할 기사와 재무제표가 많아진다.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싸워야 하고 쏟아지는 예측과 억측을 구분해내야 한다. 많은 종목은 서로 상쇄 효과를 줄 때도 있지만 감당할 에너지가 떨어지면 결국은 정리해야 할 때가 온다. 내 증권계좌의 ‘관심 종목’에는 20개 이상의 종목이 있지만 ‘보유 종목’이 늘어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한때 관심 종목의 주가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정찰병을 1주씩 사기도 했었다. 사지 않으면 관심으로 끝나버리고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1주만 사서 정찰병을 세우는 일도 일회용품 같아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시세창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두 손이 자꾸 핸드폰으로 가지 않게 단속하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나는 주식 개장시간인 9시 10분 전부터 스탠바이 상태였다. 가장 쓸데없고 비효율적인 아침 시간 낭비였다. 내가 주식을 사고팔면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은 9시에 증권사 앱을 열지 않는 것과 10시까지 거래하지 않는 것이다.


아침은 가격 변동이 큰 시간이다. 게다가 급락장에서 세상이 무너진 듯 패닉 하고 급등장에서는 희망을 가졌다가 오후에 배신당하는 경험도 수차례 하게 된다. 미적지근한 장에서는 내 하루도 그저 그럴 것만 같다. 주가의 등락에 따라 나의 아침이 좌우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9시와 오후 3시 30분이 되면 감각적으로 나는 주식거래 마인드가 된다. 급락장이나 이벤트가 있을 수 있으니 알림 설정을 해두었다. 목표가를 내가 생각하는 최고액과 최저액으로 설정해두면 알림이 오니 잦은 등락률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문득 궁금해질 때만 시세 창과 잔고를 확인한다.


마지막 원칙은 정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는 참 다양한 소리들이 들린다. 공매도, 외국인이나 기관의 매도 소식, 모간스탠리의 전망, 나스닥의 유튜버들의 다양한 분석과 예측...


“주식 카페 들어가서 정보 안 봐? 투자자들끼리 하는 단톡방도 많이들 있대.”

친구는 가끔 블로그나 투자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곤 했다. 귀가 솔깃하는 정보들이 많겠지만 나는 내가 필요한 정보만 습득한다. 과한 정보나 추측은 내게 무의미하다.


여러 사람의 관점과 정보를 듣는 일이 도움이 될 때도 많지만 결국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얄팍한 정보들을 깊이 있게 편집하는 일은 내가 스스로 할 일이다. 주식에 한해서 나는 독불장군이 되기도 한다.



이사를 하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아직도 드레스룸은 바구니에 옷들이 넘쳐나고 팬트리에 쑤셔 넣어 놓은 짐들이 가득하다. 커피머신도 사고 싶고 블루투스 스피커도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집에 커피머신을 두고도 스타벅스로 갈 것이 뻔하다.


주식을 사고파는 일은 더욱이 미니멀하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지속 가능하도록 돕는 정리 컨설턴트가 된 듯 주식을 사고파는 일상을 심플하고 간결하게 만들 수 있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스케일 정도로 주식을 사고 시간과 에너지를 적당히 들일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주식 때문에 새치가 늘어나고 나의 일상이 어질러지는 꼴은 보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로봇 청소기 택배가 도착했다. 와이파이에 연결해서 우리 집 도면을 그려야 한다. 로봇 청소기가 움직이는 데 걸리적거리지 않게 식탁 의자와 잡동사니들도 치워야 한다.


“여보, 이거 먼지랑 물청소 둘 다 되는 거지?”

“아니, 물걸레 로봇 청소기인데? 그냥 로봇 청소기도 필요해?”

“아놔....”


남편은 요즘 로봇 청소기는 먼지통도 자동으로 비워진다며 검색해서 보여줄 태세다. 아, 그냥 빗자루로 쓸고 밀걸레로 밀고 싶다. 주식과 일상의 미니멀 라이프는 아이러니하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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