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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과 짜릿함 사이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20)

by 김세인

나는 어릴 때도 지금도 놀이 공원에 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자이로드롭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고 바이킹은 온갖 안전장치를 하고서도 공중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싫다. 민망함을 떨쳐낸다면 되도록 움직임이 없는 회전목마가 그나마 탈 만했다. 고작 내가 용기 내서 타는 기구는 배를 타고 한 바퀴 돌다가 급격히 내려가는 기구였다.


주식을 할 때도 나는 짜릿함을 즐기지 못한다. 그렇다고 지루함을 견디는 것도 아니다.

그 중간에서 어딘가 적당한 지점을 찾으려 한다.


주식매매를 하다 보면 속이 탈 때가 많다.

남들 다 오를 때 안 오르고 남들 다 떨어질 때 같이 떨어지는 종목을 가지고 있을 때다. 주가가 아래로 끝없이 떨어질 정도의 손해는 아니지만 몇 달을 기다려도 주가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종목을 가지고 있을 때도 그렇다.


실적 발표를 하는 날 어닝 서프라이즈도 어닝 쇼크도 없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최신 뉴스가 몇 달 전이다. 애널리스트의 목표주가나 주가 분석도 없다. 하락장에서야 선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상승장에서 옆집 종목이 잘 나갈 때는 배 아픈 놀부 심보가 된다.


쿠팡과 마켓컬리가 오를 때 백화점이나 마트의 주식은 재미가 없다. 금리가 떨어질 때 은행 종목도 그렇다. 수주로 먹고 사는 회사가 한동안 수주 소식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회사나 성수기가 있고 비수기가 있지만 특별한 이벤트나 모멘텀이 없는 기간이 길게 이어질 때 인내심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


짜릿한 종목은 당연히 급격히 오르는 종목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종목 중 해상화물을 운송하는 HMM이 그랬다. 2020년 5천 원대였던 주가가 급격하고도 꾸준히 오르기 시작하더니 4만 원대까지 올랐다. 나는 주가가 7,000원쯤일 때 150만 원을 투자했다.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면 이상하다 싶어 아마 중간에 팔았을 것이다.


잃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관찰자 시점을 유지했다. 매일 올랐다. 점점 미친 듯이 그래프가 올라갔다. 수익률이 끝없이 치솟았다. 100 퍼센트, 200 퍼센트, 250 퍼센트....




행운아를 만나더라도 결국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오를 줄 알았더라면 더 샀어야 했는데.’

‘팔지 말고 베짱을 가졌어야 했는데.’


욕심은 끝이 없다.


지루한 종목이나 짜릿한 종목이나 둘 다 정신에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지루하면 속이 터지고 짜릿하면 마음이 불안하거나 더 큰 욕심이 든다. 계속 오르니 팔지도 못하고 갖고 있자니 언제 폭락할지 몰라 무서운 종목들이 나는 결코 짜릿하지 않다. 가끔 테슬라나 HMM처럼 예외가 있지만 대부분 급등은 급락을 몰고 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루한 종목도, 짜릿한 종목도 좋아하지 않는다. 지루함과 짜릿함 가운데쯤, 아니 오히려 지루함에 가까운 종목이 좋다. 그렇게 한 칸씩 계단을 올라가듯 천천히 오르는 종목이 좋다.


나에게는 그런 종목이 찌릿찌릿한 쾌감을 준다.


애널리스트의 종목 리포트와 목표주가가 없다고 해서 주가가 꼭 지루하리란 법은 없다. 남들이 잘 모르는 이름 없는 종목이라고 다 지루한 것도 아니다. 나는 요즘 내 포트폴리오에 대형우량주를 분배해놓은 다음 약간 지루한 종목들을 찾아 하나씩 담고 있다.


나는 주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언급하는 종목을 주목하는 편이지만 피터린치가 얘기한 멋진 종목들의 특징을 살피기도 한다. 그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단순한 사업을 하는 회사, 따분하고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회사, 기관투자자들이 보유하지 않은 회사, 폐기물 처리나 장례사업처럼 혐오스럽거나 음울한 사업을 하는 회사, 아무도 경쟁을 걸어오지 않은 채석강 사업. 주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인기가 없는 종목들에 대해 주목한다고 했다. 물론 재무제표가 탄탄하고 수익이 높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내가 최근에 발견한 약간 지루한 종목은 ‘인선이엔티’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업체다. 몇 달 전 9,000원대에 매수해서 13,000원까지 천천히 올랐다. 이 종목은 급등과 급락이 별로 없다. 매일 50원, 100원씩 오르거나 떨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400원이 오르면 다음 날 250원이 떨어진다. 투자한 돈을 급격히 잃을 걱정도 덜하다.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고 경쟁자가 진입하기는 어려운 사업이다.


하루하루 주가의 흐름은 더디다. 지루함에 가깝다. 지루해도 묵직하고 계단을 잘 탄다면 견딜만하다.





쇼펜하우어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주식은 어떨까.


주식은 짜릿함과 지루함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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