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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시럽 말고 그냥 아메리카노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22)

by 김세인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아메리카노 진해 진해 진해

어떻게 하노 시럽 시럽 싫어

빼고 주세요 빼고 주세요 ♪


10cm가 불렀던 아메리카노 노래를 들을 때만 해도 난 아메리카노보다 캐러멜 마키아토가 좋았다. 작은 잔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을 보면 진정한 커피 애호가처럼 멋있어 보였다. 휘핑크림을 얹은 에스프레소 콘파냐도 시도해 봤지만 나에게는 너무 진했다.


대학생 때 나는 커피를 단맛으로 마셨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맛있어서라기보다는 카페인을 원해서였다. 누군가 믹스 커피의 향을 퍼뜨리면 참지 못하고 종이컵과 커피를 가지러 정수기 앞으로 향했다. 종이컵에 뜨거운 커피를 담으면 미세 플라스틱을 함께 먹는다는 것도, 양을 조절하지 않으면 유익하지 않은 지방들이 쌓인다는 것도 모른척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인스턴트커피만큼 빠르고 진한 향이 필요하지 않았다. 좋은 원두를 천천히 가는 향만 맡아도 좋았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카페인의 역할을 충족시키는 듯한 믹스 커피에 익숙했던 나는 여전히 약간의 단맛을 찾았다. 캐러멜 시럽보다는 연한 바닐라 시럽 정도가 좋았다. 설탕이나 시럽을 첨가한 아메리카노도 매일 먹다 보니 입에 찝찝함이 남았다.


달콤함이 초래한 씁쓸함이었다.




주식을 시작하고 인스턴트커피 같은 종목만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좋은 원두를 찾아 갈아내듯 투자할 가치를 지닌 종목을 찾아 분별하는 작업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향이 진하게 나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이들을 쫓아갔다. 빨리 오르고 많이 벌 수 있는 그런 세계로.


우연히 그런 세계에 잠깐 머무를 때면 현실 세계에 대한 내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주식으로 돈을 쉽게 벌 때는 갑자기 졸부가 된 양 돈의 가치에 대한 혼란이 오기도 했다.


사실 처음부터 야심 찬 타짜처럼 주식시장에 덤벼든 것은 아니었다. 생활비에 조금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 그릇은 잔치국수를 담는 깊고 넓은 그릇이 아니었다. 내 배포는 조기 한 마리 놓을 정도의 얄팍하고 좁은 그릇이었다.


그릇에 담는 돈은 점점 많아지는데 뭔가 모르게 내 삶의 조화와 균형에 스멀스멀 틈이 생기는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일 못지않은 스트레스의 정체를 살폈다. 수시로 시세판을 들여다보느라 나빠질 시력과 핸드폰을 들고 있느라 무리가 될 약한 손목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그 정체를 알아냈다.


주식을 사고 파느라 휘말린 나의 정신이었다. 주식으로 얻은 수익이 바닐라 시럽처럼 달콤하지만 맞은편 쪽 정신은 정처 없이 붕붕 떠다니는 듯했다. 어떤 종목을 고를지 어떻게 기가 막힌 마켓타이밍을 잡을지보다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주식의 본질을 이해하고 내 정신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했다. 세상에 마음 편한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던가. 어떻게 해야 나의 영혼이 온전할지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실천하는 연습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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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으로 돈을 벌어보면 단맛이 든다. 그 단맛은 돈에 대한 가치관을 자칫 해치기도 한다. 조금씩 시럽 양을 줄이고 내 정신에 든 단맛을 걷어내려고 노력했다.


이제 나는 아메리카노의 담백함을 즐긴다. 주식이 나에게 매일 함께 하는 아메리카노처럼 일상의 친구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주식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돈의 속성과 가치를 가늠하는 방향이 느리게 내리는 아메리카노 같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평온할 수 있길 바란다. 주식 때문이 아니라도 우리 삶은 바람 잘 날 없으니 그저 담백하게 주식을 대하고 싶다. 친한 친구지만 내 삶에 너무 깊이, 너무 진하게 스며들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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