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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은 주부가 하는 거야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24)

by 김세인

“생일 선물로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특별히 필요한 거 없어. 알잖아.”

“알았어. 현금으로 준비하란 얘기지?”


눈빛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결혼 이후, 선물에 대한 로망은 없었다. 주부인 나에게 엑스트라 현금이야말로 성과금과 같은 선물이었다. 부부 각자 용돈을 책정해 두었지만 마음의 안정을 위해 나의 비상금도 필요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각자의 현금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비상금으로 주식을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칫 잘못 투자했다가 없어질까 무서워 그 돈은 그대로 통장에 두기만 했다. 얼마 되지도 않았고 비상금인 만큼 따뜻한 이불속에 넣어두고 싶었다. 때때로 돈이 생길 때면 나는 카카오 뱅크 계좌를 만들어 모아두었다. 매주마다 자신이 설정한 만큼 돈을 증액해서 모으는 카카오 뱅크 26주 적금을 하기도 했다. 20주쯤 되면 적금 실패 문자가 오는 날도 있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매달 나의 통장에 찍히던 월급과 보너스가 없다는 사실이 막막했다. 월급을 받는 사람이 한 사람으로 줄어서만은 아니었다. 남편의 용돈을 제외한 월급이 나에게 이체되었지만 한동안 나는 자존감이 떨어졌다. 직업란을 체크할 때마다 주부라고 표기하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집안일과 육아로 얻는 정서적 안정감이 내가 일해서 버는 수입이 없다는 공허함을 모두 채워주지는 못했다.


어느 날, 은행 통장 대신 증권계좌를 만들었다. 우리 부부의 주식투자를 위한 계좌 하나, 아이의 세뱃돈을 넣을 계좌 하나를 만들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 만들어두었던 증권계좌까지 총 3개가 되었다.


첫 번째 계좌에는 우리 부부가 몇 년 동안 운영해온 투자금이 들어있다. 오랜 시간 함께 우정을 나눈 우량주 종목들이 대부분이다. 초반에는 직장에 있는 남편을 대신해 내 계좌로 주식을 거래했다. 그때는 작은 일들까지 하나하나 다 상의했다. 몇 주를 살지, 어느 타이밍에 살지, 어떤 종목을 사고 팔지. 이제 우리는 증권계좌를 따로 가지고 있다. 큰 그림은 같이 상의하지만 디테일한 거래들은 각자 결정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수없이 마찰과 시행착오를 거쳤다.


두 번째 세뱃돈 계좌는 폭락과 폭등을 거듭했다. 최근에는 중국 전기차 ETF를 사두었다. 아이들이 경제에 대해 조금씩 알고 스스로 판단하기 전까지는 개별 종목 대신 한 분야에 여러 종목을 모아둔 ETF가 나을 것 같았다. 이 계좌는 되도록 자주 거래하지 않고 장기 투자할 수 있는 종목이나 ETF 종류를 사려고 한다.


“엄마, 내 돈으로 투자한 중국 주식 아직도 마이너스야? 내 친구들 통장에 세뱃돈이 나보다 더 많대.”


아이가 가끔 묻는다. 민망하지만 금방 회복할 거라고 얼버무린다. 투자는 돈을 잃을 수도 있는 거라고 말하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미국에 투자할 걸 그랬어.’

세 번째 계좌는 오랜 시간 비어 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지인 또는 증권회사 직원의 포트폴리오대로 움직이던 계좌였다. 나는 재테크를 하는 직장인이라는 기분만 느꼈다. 재테크의 기본 상식과 태도를 갖추지 못한 직장인 한 사람의 월급은 손해 본 채로 다른 은행계좌로 이체되었다. 더 이상 증권계좌와는 인연을 맺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 년간 01로 끝나는 주식위탁계좌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실수로 잘못 클릭했는데 잊고 있던 세 번째 계좌가 나왔다. 카카오 뱅크 계좌에 얌전하고 소중하게 맡겨두었던 비상금이 생각났다.

주식투자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돈은 제 발로 모험을 감행했다. 대신 나름대로 안정적이라 판단한 주식을 사기로 결심했다. 우량주는 몇 주 못 사니 1주에 9천 원 정도 하는 주식을 모으기 시작했다. 매수한 지 1년 정도 지나자 다행히 수익률은 15 퍼센트가 되었다. 카카오 뱅크에 둔 것보다 훨씬 좋은 수익률이었다.


주식거래를 할 때 주부라서 좋은 점이 많다.

직장인 친구들은 회사에서 주식을 거래하기에는 신경 쓰이고 일에 집중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나는 특별한 시간이나 상사의 부름에 제약을 받지 않고 거래할 수 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운동 나갈 준비를 할 때쯤 무심한 듯 시세 창을 확인할 여유를 가진다는 점에서 주식은 주부가 하기 좋은 시스템이다. 아이들이 블록 놀이를 할 때 짬을 내서 신문을 보고 학원에 데릴러 갈때 경제방송을 듣는다.

단지 코스피 지수가 내 기분의 변주곡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 된다.

2020.12.23 조선일보


‘3040 우먼 버핏(여성과 워런 버핏의 합성어) 수익률 26%’

‘주식열풍 뛰어든 맘 개미들’

‘여왕개미가 몰려온다’


주식 열풍이 분 작년부터 종종 이런 기사들을 봤다. 기업가치가 높은 우량주에 투자해서 자주 사고팔지 않은 주식 초보 여성들이 오히려 수익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해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나는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주식을 거래하면서 많은 경험과 지식에 주눅 들 때가 많았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생각에 판단의 주체를 타인에게 의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주식을 거래하는 태도와 나만의 경험을 토대로 온전히 내 결정을 믿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부인 나에게 증권계좌는 어떤 존재인가.

생활비, 교육비, 공과금 계좌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일을 그만두고 주부로 지낸 지 7년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 증권계좌는 든든한 나만의 메타버스 통장이다. 당장 돈을 꺼내 쓰지 않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나만의 경제적인 미래를 상상한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주식을 거래하면서 나의 아바타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수익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잘 팔리는 물건을 살펴보는 생산자의 관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해양, 바이오 등 여러 분야의 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일상에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메타버스에서는 미래를 먹고 산다.


이제 나는 월급 통장 대신 증권계좌에 돈을 입금한다. 투자금은 조금씩 불어나고 배당금은 연금이 되는 상상이 현실이 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다.


나에게 누군가의 인정과 평가, 월급을 기다리던 때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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