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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님, 주주총회 있습니다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10)

by 김세인

“노랑 통닭 시킬까, BBQ 시킬까?”

“치킨은 교촌이지.”

“언제부터? 교촌치킨 양 적다고 안 좋아하지 않았어?”

“나 교촌에프앤비 주주라고. 회사를 생각해야지.”


얼마 전, 친구와 어떤 치킨을 시킬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교촌치킨이 상장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치킨을 시키면서 주식을 생각하게 될 줄 몰랐다. 교촌치킨 주주라는 말이 새삼 다르게 와 닿았다. 반도체, 바이오, 전기차, 화학 관련주들을 살 때는 내 일상생활과 떨어져 있어서 주주 정신을 발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문득 한 회사의 주주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회사의 주식을 1주만 가지고 있어도 주주라 할 수 있다. 주주는 이사회 회의록, 재무제표를 열람할 수 있고 책임 소재는 없지만 의결권도 가질 수 있다. 오늘 A 회사의 주주였다가 내일은 경쟁사 B회사의 주주가 된다 해서 누가 배신자라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언제든 그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팔면 된다.


나 같은 일반적인 개인투자자로서 주주란 그저 주식을 소유하고 수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일까. 물론 많은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그 회사에 투자해서 수익을 얻기 위해 주주가 된다. 그럼에도 주주라는 의식을 가지는 것은 투자에 어떤 도움이 될까.


주주는 영어로 stockholder, 한자로 그루 주(株), 주인 주(主)다.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진다면 친구처럼 경쟁사의 수익보다는 내 회사의 수익을 올리려 할 것이다. 회사 안팎으로 무슨 일이 없는지 노심초사 살필 것이다. 조그만 흠집이 났다고 쉽게 내다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주주라면 자주 받는 우편물이 있다.


삼성전자 주주님, 3월 17일 오전에 수원 컨벤션센터에서 주주총회 있답니다.

남편에게 온 우편물을 뜯어봤더니 주주총회 참석 안내문이었다. 장난 삼아 주주총회에 갈 거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손사래를 친다. 우리 집 우편함에는 하나은행에서 우편물이 자주 온다. 나는 하나은행 계좌가 없는데 생각하며 봉투를 뜯어보면 익숙한 종이가 나온다. ‘주주총회 참석장’이라는 제목과 함께 나의 주주 번호와 소유 주식 수, 주주총회 일시와 장소가 적혀 있다. 내가 소유한 주식 수를 확인하고 나면 종이는 자연스레 휴지통에 버려졌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문득 주주총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 손 잡고 온 8살 주주까지... 삼성에 질문 있습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한 역대 최대 주주 수가 1000명인데 올해 900여 명이 참석했다는 기사였다. 우리나라 국민 중 삼성전자 소액주주가 300만 명에 가깝다니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싶다. 하지만 여전히 ‘주주총회’라는 단어는 나와는 먼 이야기 같았다. 주주총회는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 속 장면이 아니던가.




주주총회는 어떤 풍경일까.

뉴스 영상으로 보는 총회는 드라마에서 보던 특정 사람들만 들어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삼성전자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 컨벤션 센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사회 의장이 앞에서 여러 안건을 이야기하고 주주들은 단말기를 가지고 앉아 있었다.


올해 삼성전자 주주총회는 최초로 하는 일이 많았다. 처음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개최했고 박수 통과 대신 모든 안건에 대해 전자표결 단말기를 지급해서 표결하게 했다고 한다. 현장에 참석한 주주뿐 아니라 사전 질문을 받아서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에도 경영진이 답변했다.


주주총회는 3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다. 주주들은 길고 긴 시간을 기다려서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나라면 앞으로도 삼성전자를 팔지 않고 가지고 있어도 될지 확신을 가질만한 근거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총회에서 무엇보다 최고의 관심사인 배당에 대해서도 기다렸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역대 최대 주주를 가진 회사답게 역대 최고의 배당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많은 주식투자자들은 내가 투자한 회사의 비전과 전망을 예측하기 위해 정보들을 찾아 헤맨다. 유튜브와 신문, 애널리스트 보고서와 지인들을 동원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경영진 얼굴을 보고 제무재표 보고를 들으며 직접 묻고 답변을 듣는 것보다 더 나은 정보와 전망이 있을까.



워런 버핏이 참석하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어떤 풍경일까.


2000년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참석했던 조선일보 기사를 쓴 한 기자는 그날이 이벤트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워런 버핏이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이사회 회원 선출에 관한 안건은 5분이 채 안 걸렸다고 한다. 나머지 시간은 주주들이 버핏과 멍거에게 질문하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2021년 온라인 주주총회도 4시간이 넘는 문답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화성에 보낼 우주선과 탑승객의 안전을 보장하는 보험을 발행하겠습니까?”


“그것은 보험료가 얼마인지와 일론 머스크 자신이 탑승하는지에 따라 결정할 문제죠,”


90세가 넘는 워런 버핏의 재치와 투자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 철학이 묻어나는 주주총회라면 투자자로서 충분히 갈 만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누군가는 한가하게 주주총회 갈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해 삼성전자 주주총회는 한가하지 않은데도 참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한 어린이 주주도 있었을 정도다. 주주총회가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가의 상징 컷이 아니라 회사와 투자자 간의 신뢰와 이해를 쌓는 의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끝나면 나도 아이들과 함께 주주총회 의자에 앉아보고 싶다.


먼 훗날 아이들이 주식을 살 때 그 날의 기억이 건전한 주주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사탕과 초콜릿을 잔뜩 들고서라도 한 번쯤 가볼만할 것이다.


처음으로 나는 우편물에 적힌 주주총회 날짜와 장소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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