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9)
늘 동쪽으로 움직이던 개미는 어느 날 서쪽으로 가서 발을 조금 디뎌보았다.
친구들 중 일부는 이미 새로운 세계인 서쪽으로 떠나고 난 후였다. 먹이를 구하지 못해 빈털터리로 다시 돌아온 친구도 있었고 더 많은 먹이를 가지고 돌아온 친구도 있었다. 서쪽에서도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한 친구들은 자신의 전투력과 영향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개미는 새로운 세상이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서쪽으로 조금씩 발길을 옮길수록 다른 생김새의 개미들이 보였고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은 동쪽보다 훨씬 넓고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이 보였다. 익숙하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회사의 이름들이 보였다.
애플, 맥도널드, 넷플릭스, 스타벅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먹거리들이 새롭고 풍부해 보였지만 먹이를 구하는 방식은 달라 보였다.
개미는 한동안 헤매기 시작했다. 일단 밤낮이 바뀌었다. 부엉이가 된 것 같았다. 밤 11시 30분부터 새벽 6시가 활동시간이었다. 자던 시간에 일어나서 먹이를 구하고 일을 해야 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친구들과 다른 종인 개미들과 소통이 쉽지 않았다. 정보를 구하는 방식도 달라 먹잇감을 구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다. 개미는 조금씩 동쪽 고향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동쪽 개미에게도 미국 주식을 사는 일은 생각보다 편하고 간단했다. 해외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계좌에 돈을 넣어두면 알아서 환전이 돼서 주식을 살 수 있었다.
내가 미국 주식을 기웃거리던 몇 달 전, 미국 나스닥 시장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미친 듯이 돈이 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흥분한 서학 개미 중의 하나였던 나는 ‘지금이야’ 하고 외치며 주식 마트에 들어섰다.
늘 가던 곳이었다면 가격, 신선도를 따져가며 꼼꼼하게 샀을 텐데 새로운 마트에서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동쪽에서 익혔던 평정심과 나만의 철학은 잊히고 있었다.
일단 해외계좌에서 매수 버튼을 눌렀다.
내가 처음 산 종목은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밤 11시 30분까지 기다렸다가 긴장되는 마음으로 매수 버튼을 눌렀다. 누르는 대로 바로 매수가 체결되었다. 몇 번 그렇게 체결이 되고 나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 주식은 이렇게 체결이 빨리 되나?’
해외 주식 주문창에서 내가 보는 주가는 15분 지연된 가격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나는 15분 전, 더 비싼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시간 미국 주식 시세 앱을 따로 다운로드하여 봐야 했다.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날짜부터는 1시간 앞당겨 장이 열렸다. 나는 11시 30분까지 기다렸다가 증권사 앱에 접속하고는 이미 시작된 장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주가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 이상하다 싶으면 미국의 국가 공휴일이었다.
두 번째 내가 산 종목은 화이자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준비 중인 글로벌 기업이니 미리 선점해 두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백신 개발을 발표한 날 나는 폭등을 기대했다. 한국 주식이었다면 상한가를 몇 번 가고도 남을 일이었다.
화이자는 고작 15달러 내외로 올랐고 부작용 기사가 나올 때마다 떨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고가에 매수해서 모멘텀이 보이지 않는다며 매도했고 화이자는 ‘뭐 이런 종목이 다 있어’ 하며 팔았다.
서쪽 시장에서는 테슬라가 오르는 걸 구경만 하다 왔다.
예전에 비하면 해외주식매매가 정말 간편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환경이 불편하다.
나는 아직 서쪽을 정복하지 못했다.
미국 주식을 권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이 자는 동안 돈을 벌어준다고 말이다. 그러나 자는 동안에 돈을 벌기는커녕 자다 벌떡 일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동쪽이 편하고 익숙하다.
물론 언젠가는 서쪽도 다시 한번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고 가볼 것이다.
나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마이크로소프트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