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위로의 계절
할머니 집은 나에게 이곳도 저곳도 아닌 제3의 공간이다. 집도 회사도 아닌 오롯이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곳.
현실을 벗어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여행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고요함을 비로소 만나게 해주는 유일한 곳이다.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장소라, 때때로 그곳에서는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지형 또한 그러한데 고도가 높은 그곳은 앞과 뒤에는 산이 있고 가운데는 물이 흐른다. 여름에는 다른 곳보다 시원하고, 겨울에는 다른 곳보다 더 춥다.
그렇게나 할머니 집을 좋아하면서 연휴가 5일이나 되었던 이번 설날에는 왜 가지 않았냐고 물으면 그냥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할까. 웬일인지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설날이라고 연락이 온 친구는 네가 이유 없이 할머니 집에 가지 않은 적이 없지 않냐며 왜 안 갔냐 물었지만, 정말 이유가 없었다. 이내 할머니 집에 가지 않은 걸 후회했을 때는 집 앞에 새하얀 눈이 가득 내려앉았을 때였다.
할머니 집에도 많은 눈이 내렸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했다. 장독대에 위에도 눈이 내려앉았으며, 계곡의 물도 얼었다 했다. 아무도 밟지 않았을 깨끗한 눈을 오랫동안 내버려 둔 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니면 나 혼자라도 좋으니 마당에서 이글루를 만들어도 좋았겠다.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내가 만났던 눈 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눈은 어린 나의 허리를 넘을 정도로 내렸던, 할머니 집에서 만난 눈이었다. 눈 오는 겨울이면 아침에 할머니가 아랫방으로 아침상을 들고 오셔서는 하얀 밥 위에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잘라주신 무김치를 올려 주셨다. 하얀밥 위에 무김치를 올려 먹는 게 그렇게나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눈썰매를 타러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비료포대에 볏짚을 넣어주시고는 미리 간식을 만들어 놓으셨다.
언니와 나는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눈썰매를 탔다. 입이 새파래질 때까지 눈썰매를 탄 우리는 옷과 장갑에 눈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아랫방에 들어왔고, 열린 문 밖으로 옷을 탈탈 턴 뒤 아랫목에 널어 말리곤 했다 했다. 우리는 내복만 입은 채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할머니, 할아버지와 귤을 까먹곤 했다.
장독대에 쌓인 눈을 보고 있으면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눈이 쌓인 장독대 안에는 늘 고추장과 간장이 들어있었다. 할머니는 눈이 쌓인 장독대의 뚜껑을 들고서 간장을 뜨곤 하셨는데 돌이켜보면 그때의 장면이 꼭 동화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그리운 건 뭘까. 그때의 즐거움일까? 아니면 돌아가셔 다시는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일까? 설날임에도 보지 못했던 할머니일까?
할머니 집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는 말에 내가 머무르는 이곳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미 밟히고 차들이 지나가 더러워지고 다 녹은 눈과 달리 그곳의 눈은 여전히 하얗고 예쁠 거라는 기대감도 잠시, 이내 발걸음 하지 못한 오늘에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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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내 자신이 참 어리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리고 또 어려서 누군가 한 번만 꼭 안아줬으면 싶을 때가 있다. 어린시절의 나에게 할아버지가 늘 해주던 말이 있다. 10살의 나에게, 15살의 나에게, 20살의 나에게, 할아버지가 해주던 말이 그리울 때가 많았다.
'걱정하지마 아가, 다 잘될테니까'
나이를 먹어도 늘 천방지축 아이로 있을 수 있었고, 내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갈 곳이 있다고 느꼈었다. 지금 나는 내 어떤 선택에도 상관없이 어떤 결과에도 상관없이 갈 곳이 있을까. 다시 듣고 싶었다.
'그래도 걱정하지마 아가, 다 잘될테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네 편이야.'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겨을 : 위로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