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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텅 빈 방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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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은 Jul 23. 2022

85% 이상 부서졌던 바르샤바

- 베를린, 폴란드 일기 18

크라쿠프 역에서 바르샤바로 떠나야 하는데, 기차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 플랫폼에서 서성이다가 역무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폴란드어로 나오는 안내 방송은 우리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잠시 뒤 전광판에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20분 늦는다는 영어 문장이 아주 조그맣게 나왔다. 폴란드어를 모르는 여행자들은 이 전광판을 지켜보면서 한데 뭉쳐 있었다. 20분이 30분, 40분, 급기야 75분으로 늘어났다.

“2번 게이트로 바뀌었대요!”

우리가 역무원에게 표를 보여줄 때 옆에 있던 분이 내게 외쳤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층계를 내려가서 다시 반대편으로 올라갔다. 도착하는 기차는 우리가 탈 기차가 아니었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에 문제가 생겨서 체코에서 오는 기차 뒤에 몇 량을 더 달고 오는 중이었다. 우리는 일반석으로 예매했는데, 이 기차 객석은 모두 콤파트먼트였다. 예약한 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전혀 다른 기차니 아무데나 앉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작은 웨하스 하나씩을 나눠졌다. 그러면서 생수를 한 병씩 돌리다가, 우리에게 둘이 일행이냐고 묻더니 생수를 한 병만 줬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날씨는 쌀쌀했고, 거리에는 경량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스카프를 친친 목에 두르고, 점퍼를 채웠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넣고 바르샤바 시내를 돌아다녔다.     


폴란드는 리투아니아와 연방을 맺어 중세 말에 세력을 과시했지만, 러시아와 벌인 전쟁으로 러시아 통치를 받았다. 이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폴란드를 간섭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고,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 통치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폴란드는 소련의 통치를 받았고, 현재는 자유화를 이룬, 공화제이면서 대통령 중심제인 국가다.     


폴란드 역사박물관 앞에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가 있다. 이곳은 당시 서독 총리인 빌리 브란트가 무릎을 꿇은 곳이다. 폴란드에는 3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살았고, 1939년 당시 바르샤바에는 39만 명에 가까운 유대인이 살았다. 이들 대부분이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당했다.  

    

비스와 강변에 인어상이 우뚝 서 있다. 오른손에 칼, 왼손에 방패를 든 인어는 언제든 싸우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듯하다. 바르샤바의 유래로 바르라는 젊은 어부와 싸바라는 인어가 부부로 살았고, 그 사이에 낳은 자손이 번성해서 ‘바르샤바’라는 도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싸바가 바다로 돌아갔을 때 바르의 눈물이 땅에 채워질 정도로 많았다고도 한다.

강 근처에 부서진 다리가 풀밭에 따로 전시되어 있다. 이 다리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의해 부서진 것이다. 이 때문에 바르샤바는 외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립된 채 싸운다.  

   

도시 곳곳에 ‘전쟁’과 관련한 기념물들이 많다. 이 도시는 독일군에 저항하면서 봉기를 일으킨 대가로 85%가 파괴될 정도로 그 후유증이 심각했다.      

우리는 쇼팽 박물관(Muzeum Fryderyka Chopina)에 들렀다. 나는 파리에 있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쇼팽의 무덤을 보았다. 그리고 그 무덤에 폴란드 흙을 뿌렸고, 사후에 데드마스크와 손을 석고로 떴고, 심장은 폴란드로 보내졌다. 쇼팽이 외국으로 떠돌던 그 시기에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해 지배하던 때였다. 폴란드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 쇼팽, 그가 쓰던 피아노, 가구들과 편지와 교우 관계 등 쇼팽에 관한 것을 볼 수 있고 지하에 있는 음악감상실에서는 헤드폰을 쓰고 감상할 수 있다.

기획전시실에서 각 나라별로 쇼팽의 이름을 읽는 전시를 관람했는데, 척 들어도 한국인인 사람이 정직한 발음으로 “프리드리히 쇼팽”이라고 말했다.     

3층 전시실에서 2층 전시실로 내려오는 길에 창밖으로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비틀즈를 다룬 영화 홍보였다. 반려가 반색을 했다.

“나, 오늘 비틀즈 티셔츠 입었는데!”

비틀즈 광팬인 반려가 무려 직구로 산 티셔츠를 입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물관을 나와 그 간판이 가장 잘 보이는 곳까지 가서 사진을 찍었다. 첫째에게 보여줬더니 어떻게 거기까지 그걸 입고 갔느냐며 깔깔 웃었다.     


코페르니쿠스 과학 박물관에서는 예약이 다 차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사실, 과학박물관이 있다는 걸 거기 가서야 알았다.) 그래서 그 밖을 배회하다가 돌아섰다. 

    

무명 용사의 묘는 폴란드가 외세와 맞서 싸운 시간들이 얼마나 잦았으며, 그 기간이 길었는지를 숫자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을 수많은 무명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횃불이 불타고 있다. 이곳을 군인 두 명이 지키고 있다.

몇해 전 노르망디 묘지에서 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이라는 흰 십자가를 떠올렸다. 

    

대통령궁을 지나고 잠코비 광장(Plac Zamkowy)에 다다르자, 지그문트 3세 동상과 크라쿠프 구시가에서 봤던 건물 형태와 비슷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크라쿠프는 옛 형태에 가까운 반면, 바르샤바의 잠코비 광장에 있는 건물들은 복원된 것이다. 16세기 말 크라쿠프에서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긴 왕 지크문트 3세 동상도 복격으로 부서졌다. 복원한 왕궁 옆에 부서진 동상도 눕혀져 있다. 대리석을 스쳐간 총알 자국 등을 볼 수 있다.   


  

건물들을 자세히 보면 주춧돌과 그 위로 올라간 건물이 다르다. 아래 남겨진 주춧돌은 원래 건물에 있던 것이고, 그 위는 복원된 것이다.

 잠코비 광장 한쪽에는 복원을 전체 지휘한 사람의 동상이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똑같은 높이로 서 있다.   

  

폴란드식 만두인 ‘피에로기(Pierogi)’를 먹는 사람들 뒤로 해가 뉘엿뉘엿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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