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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Nov 13. 2023

매운 음식이 맛있는 이유

항균 가설


 한국인을 마늘의 민족이라고도 한다. 민족 설화부터가 마늘을 먹고 인간으로 태어난 곰이 등장하고, 마늘 빠진 한식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인들은 다진 마늘을 쏟아부으면서도 향신료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국의 알리오올리오를 보고 기겁을 하는 일도 흔하다. 하지만 고추, 마늘, 깻잎, 파 모두 향신료다. 너무 당연해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왜 향이 있는 요리를 맛있다고 느낄까. 음식에 후추, 마늘, 고춧가루를 뿌려대는 이유는 뭘까. 맵고 아리고 자극적인 맛은 고통을 유발하기에, 사실은 먹지 않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진화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양념된 음식을 좋아하도록 진화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요리의 필수성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원재료를 여러 번 가공해서 먹는다. 초식동물이었던 우리가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썩은 고기나 상한 음식, 날 것을 소화시키는 능력이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어떻게든 요리를 해서 먹어야만 탈이 나지 않았다. 덕분에 세균을 죽이는 향신료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게 진화론자들의 요지다. 이를 '항균 가설'이라 한다. 



 실제로 양념을 하면 해로운 미생물을 대부분 죽일 수 있고,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덕분에 고기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소화를 더 쉽게 시킬 수 있게 된다. 양파, 마늘, 오레가노 같은 허브류가 가장 살균 효과가 좋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전 세계 요리사들이 가장 애정하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더운 지역일수록 양념을 더 많이 쓰는 경향도 나타난다. 전라도 음식에 젓갈이 많이 들어가고, 인도에서 카레가 유명한 이유다. 노르웨이에서는 고기에 양념을 할 때 두 가지 이상 쓰지 않지만, 인도에서는 아홉 가지나 되는 양념을 쓴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맵고 아린 맛은 혀가 느끼는 고통이기에, 다른 포유동물은 고추나 이상한 냄새가 나는 식물을 먹지 않는다. 맵고 독특한 향은 포유동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진화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세균을 죽이는 살균 성분은 그 부산물이다. 영악한 인류는 그 점을 역이용했다. 향 채소가 쳐놓은 바리케이드를 뚫고 들어가, 그들로 하여금 세균과 맞서게 한 것이다. 양념이 없었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 요리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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