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목꼬리감기원숭이에게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연구자들이 팔을 뻗어야만 먹을 수 있도록 무거운 접시에 먹이를 올려놓는다. 친구인 바이어스와 새미가 힙을 합쳐 접시를 당긴다. 하지만 새미가 재빠르게 음식을 집고 접시를 놓는다. 먹이를 먹지 못한 바이어스는 죽을 듯이 소리를 지른다. 무안해진 새미는 먹던 걸 내려놓고 접시를 당겨 바이어스가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미가 미안함을 느끼고 자기 행동을 교정한 것이다.
우리는 공정성이 자기 이익을 넘어서는 고귀한 무엇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평등과 공정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바이어스와 새미의 사례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팀워크를 배신한 동료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 이에 죄책감을 느낀 배신자의 반성, 덕분에 다시 회복된 관계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도덕적 판단에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숨어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자신의 피자 조각이 작으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울면서 본인만 차별한다고 말한다. 그럴 때 가장 눈에 띄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실제로 평등을 추구하려면, 비교는 필수적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대적 박탈감이 일어난다. 마카크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마카크가 오이를 받고 맛있게 먹는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는 친구는 포도를 받는다. 녀석은 사육사에게 오이를 집어던지고 철창을 마구 뒤흔든다. 불공정한 대우에 항의하는 것이다.
우리도 다를 바 없다. 미국에서 일어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왜 누구만 포도를 먹느냐'에 대한 울분의 표현이었다. 문화와 국가를 막론하고 시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평등, 공정, 정의, 차별 같은 말들이다. 시위 현장에는 폭력과 고성, 분노가 넘실거린다. 공정성은 영장류 때부터 이어져왔던 진화의 유산이기 때문에 그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와 달리, 보수주의자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한다. 적절한 기준, 그리고 그 기준을 충족시킨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평등으로 생각한다. 보수가 생각하기에 경쟁은 평등과 공존할 수 있으며, 누구나 동의할 기준만 있다면 그 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노력과 능력에 따라 차이가 갈리는 것도 당연하게 여긴다. 보수가 자유 시장에 찬성하고 규제에 반대하는 이유다.
복지와 세금에 대한 관점 차이가 여기서 나타난다. 보수주의자는 세금 문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국가라는 공동체 속에서 합당한 노력으로 번 소득을 빼앗아 정부가 무임승차자에게 돌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무의식적이기에 진보가 논리나 근거로 보수를 설득하려는 시도는 매번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보수의 도덕성에는 분노나 응징 같은, 보복적인 심리가 숨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중립적인 의미인데, 적절한 기여를 한 사람에겐 오히려 보상이 충분히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 같이 노력하고 기여했는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화를 내야 한다. “죽도록 노력했는데 겨우 토끼 뒷다리뿐이라고, 다음에 잘 주겠지 뭐”하고 쿨하게 넘어가는 사냥꾼은 아내와 자식에게 충분한 고기를 공급할 수 없었을 것이며,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동양의 '역지사지', 서구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경제학에서 '팃포탯(Tit For Tat)'이라 부르는 정치적 마음이 보수 도덕성의 근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