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8월 15일, 모두가 잠든 밤, 미국 팰로앨토시 주택가에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쳤다. 잠을 자던 아홉 명의 청년들이 체포되었다. 죄목은 절도와 무장 강도였다. 마을 주민들은 평범한 청년들이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에 놀랐다. 그들은 죄를 인정하듯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청년들은 어두컴컴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 입구에는 스탠퍼드 카운티라는 팻말이 쓰여 있었고, 수감자들은 복도에 알몸으로 선 채 이를 없애는 살충제 샤워를 받았다. 그리고 번호가 적힌 죄수복을 입고 쇠사슬을 찼다. 교도관들은 군복과 선글라스, 진압봉을 들고 있었다. 간수들은 죄수들에게서 매트릭스를 빼앗아 냉기가 스며드는 콘크리트 바닥에 자게 하거나, 새벽에 팔 굽혀 펴기를 시키며 못살게 굴었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게 없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계획된 실험이었다. 지하 감옥은 사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지하 강의실이었고, 교도소장은 필립 짐바르도라는 심리학자였다. 죄수와 간수 역할 역시 임의로 배정되었다. 대학생 지원자들은 유치한 연기를 하는 대가로 하루 15달러를 받았다. 실험이 시작되는 처음까지만 해도 누구도 이 실험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첫날까지만 해도 간수와 죄수들은 서로 장난을 치면서 쉽게 번 돈으로 맥주나 마실 생각에 들떠 있었다.
장난스러운 실험이 지옥으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매소드 연기를 하듯이 역할극에 빠져들었다. 교도관 연기자들은 아동 성범죄자들을 대하는 것처럼 가짜 죄수를 학대하고 강압적으로 변했다. 죄수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고, 이후 진짜 죄수인양 비굴하고 복종적인 태도를 보였다. 단 며칠 사이에 이 실험이 가짜라는 걸 모두가 잊은 듯이 보였다. 가학성이 넘실거렸다. 실험의 총책임자인 짐바르도 역시 실제 교도소장처럼 사무실에서 CCTV를 내려다보고 죄수번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변한 짐바르도의 모습을 본 여자친구가 만류하고 나서야 실험이 중단되었다.
지금까지도 대학 교과서에 단골로 실리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인간의 지배욕과 가학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작은 권력과 지위라도 주어진다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타락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니체, 홉스가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스탠퍼드 실험은 사기였다. 애초에 실험은 인간의 폭력성을 확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부분의 교도관들은 죄수들을 친절하게 대했다. 보다 못한 짐바르도가 죄수들을 가혹하게 대하라고 계속 강요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그래서 짐바르도는 실험 데이터를 왜곡했고 여러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이미 유명인사가 된 뒤였다.
스탠퍼드의 진실은 이렇다. 2007년 연구진들이 '감옥 생활에 관한 심리학 연구'와 '심리학 연구'라는 문구로 따로 광고를 냈다. 그리고 지원자들의 심리와 인성 평가를 실시하자, 실상이 드러났다. 일반 실험 참가자에 비해 감옥 실험에 지원한 사람은 공감능력이 매우 낮았고, 높은 권위주의와 자기도취증, 착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정말로 역할극에 참여해서라도 죄수들을 괴롭히고 싶어 했던 것이다. 애초에 타인을 억누르고 지배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 타고난 악인들이 불나방처럼 권력에 이끌렸던 것이다.
암울한 진실이다. 가장 권력을 가져선 안 될 사람들이 가장 큰 권력을 손에 쥔다는 것.
실제로 사이코패스 성향이 가장 높은 직업군 중 하나가 정치 분야이고, 작은 워싱턴 주에 사이코패스가 가장 많다. 이렇게 타인을 지배하고 위계를 좋아하는 성향을 사회적 지배 경향성(Social Dominance Orientation, SDO)이라 하는데, 설문지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다.
"인생에서 앞서가려면 때로 다른 사람을 밟고 갈 필요가 있다."
"부자가 돈이 더 많은 것은 더 우수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열등하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만이 출세해야 한다."
"게임 과정보다는 승리가 더 중요하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앞서나가기만 하면 된다."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 박사는 이들을 양복을 입은 뱀이라 규정한다. 그들은 자신을 포장하는 데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후광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SDO 문항에 더 긍정적으로 대답하면서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책임과 희생을 이야기하며 모두를 속이는 것이다.
하지만 침팬지는 다르다. 우리가 침팬지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뛰어나다. 침팬지 국민들도 니키 같은 폭군을 지도자로 뽑는 실수를 하긴 하지만, 독재자의 평균 재임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들과 맞설 새 후보가 등장하면 힘을 합쳐 적극 지원하기 때문이다. 폭군은 다수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나거나, 서열 최하위로 강등된다.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호모 사피엔스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우리는 정치적 수사와 권모술수에 취약하다. 부패한 사람은 여전히 권력에 이끌리고, 권력을 얻는 데 능하다. 그들은 어떻게 포장해야 사람들이 자신에게 끌리는지 잘 알고 있고, 우리 역시 사이코패스에게 권력을 주도록 자석처럼 이끌린다. 키가 크고 자신감이 넘치거나, 얼굴이 남성적이라는 이유로 소중한 한 표를 나눠준다. 토론장에서 더 공격적이고 무례한 사람이 더 리더 같다고 여긴다. 아이들은 얼굴만 보고도 당선자를 정확히 맞춘다.
진화심리학자 반 부그트는 그 이유를 유전자에 새겨진 사냥과 전쟁 경험에서 찾는다. 신체적으로 약한 지도자를 선택한 집단은 패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논문에서는 허세와 공격성, 자만심의 유리한 점을 이야기하는데, 생존을 위해서는 뭐라도 해 보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정치 프로그램은 수만 년 전의 구버전이기 때문에, 수시로 오류와 버그가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권력은 스스로 부패한다. 평범한 사람도 권력을 쥐면 타락하고 괴물이 된다.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한 때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전과는 다르게 자기 방향으로 이마에 알파벳 E를 그린다. 자신이 강력하다는 기분에 관해 글을 쓴 사람들은 주사위 결과를 맞추려 하는 바보가 된다. 추첨으로 리더가 된 사람은 쿠키를 남기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더 시끄럽게 먹고 셔츠에 부스러기를 흘린다. 비싼 자동차를 타는 사람일수록 운전 매너는 더 형편없어진다.
권력을 쥐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능력(Mirroring)이 줄어들고,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히틀러와 나폴레옹은 며칠 안에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월동 준비를 하지 않고 러시아로 쳐들어갔다. 그 결과 독일군 14,000명이 동상으로 손발을 절단했고, 나폴레옹의 군대 60만 명 중 3분의 2가 전멸했다. 푸틴 역시 보급 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했다. 모두 심리학자들이 환상 통제라고 부르는 것에 빠져들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회사나 학교, 정치 등의 모든 조직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관리자나 임원들은 말이 통하지 않고 독선적이며, 권력을 남용한다. 또한 자신이 훨씬 우월하고 뛰어난 존재라고 여길 뿐만 아니라, 밑에 사람들은 게으르고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엄격한 감독과 명령 체계를 만들고 자신이 그 모든 것들을 관리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빅 브라더(Big Brother)는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으며, 언제든 초침이 흐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