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판 프로글로디테스(침팬지)
[인간과 유전자 차이가 1.6% 밖에 나지 않는 침팬지는 지배 욕구가 매우 강한 동물입니다. 권력은 그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인간 또한 서열을 높이려는 욕구가 강하고, 사회 또한 위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자연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인간은 원래 악하고 이기적이라는 생물학적 성악설이 1980년대부터 퍼져나갔습니다. 침팬지가 인간 본성의 거울로 이용되었고, 보수주의자들은 침팬지를 보며 환호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와 시장 만능주의가 자리잡게 되었고, 세상은 정글이 되었습니다.]
1.2 판 파니스쿠스(보노보)
[잊혀진 유인원 보노보 역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입니다.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성적 접촉으로 평화를 이루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그 어떤 동물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친화적인 동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제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이야기하는 데 보노보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자기 길들이기' 이론입니다. 보노보처럼 인간도 스스로를 선한 존재로 길들였다는 주장입니다. 이제, 학자들은 '지배'나 '경쟁' 같은 단어가 아닌, '평화'와 '이타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1.3 호모 사피엔스(인간)
[인간은 침팬지에 가까울까요? 보노보에 가까울까요? 인간이 선하냐, 악하냐는 물음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입니다. 이에 가장 적확한 답변은, '인간은 선과 악으로 나눌 만큼 단순한 종이 아니다'는 대답입니다. 인간은 선한 동시에 사악하고,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고, 권위에 복종하는 동시에 억압을 혐오하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동물입니다. 우리가 사회적인 종이기에 그렇습니다. 타인과 함께 살기 위해선 자신을 우선해야 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열과 지배, 평등과 불평등, 갈등과 평화 모두가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이지요. 국회의원들만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정치의 일부이고, 우리의 정치적 판단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경쟁과 협력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혼란과 모순을 느끼며 투표장에 갑니다. 보수와 진보는 두 극단을 임으로 나눈 것에 불과할 뿐이지요. 우리는 침팬지와 보노보의 혼혈입니다.]
2.1 호모 소시올로지쿠스(인간의 사회성)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더 사회적일까요? 인간이 더 많이 진화하고 우월한 종이라서? 진실은 반대편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다른 동물보다 더 나약하고 잘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무에서 내려와 사냥과 잡식을 시작하면서 큰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잡식동물은 독이 있거나 탈이 나는 음식을 잘 가려먹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먹이의 종류와 가공방법을 배우고 기억할 수 있는 높은 지능이 필요합니다. 사냥과 야영 기술도 습득해야 하고요. 결국 학습을 위해선 뇌에 에너지를 전부 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신체능력은 포기해야 하죠.
이런 동물들을 '제너럴리스트'라 합니다 제너럴리스트들은 신체적으로 약한 만큼 함께 뭉쳐 살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쥐나 인간이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이유입니다. 모두 신체적으로 무력한 만큼 뛰어난 지능과 사회성을 가지고 있지요. 당연히 이들은 무리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규범, 양심, 통제력, 공감능력을 진화시키게 되었고, 인간은 도덕적이고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동물이 되었습니다.
2.2 호모 모랄리스(인간의 도덕성)
[무리를 이루어 협력해야 하는 동물들은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선은 자신만 우선하는 무임승차자를 막는 것입니다.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희생하는 가운데 노력 없이 보상만 얻는 존재가 있다면 그 개체는 큰 이점을 얻을 것이고, 그의 이기적 유전자가 공동체 내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결국은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겠지요. 따라서 무임승차자를 억제하고 처벌하려는 심리가 진화했는데, 이는 보수가 복지 정책에 반대하는 심리의 원형이 됩니다.
또한 정당한 노력에 따른 대가를 받지 못했을 때 가만히 넘어가선 안되겠지요. 불공정한 결과에 대해 분노하는 심리, 불평등에 대한 심리 역시 진화하기 마련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이 공정성과 평등을 왜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2.3 호모 쿨투랄리스
[인문, 사회과학자들은 문화를 인간만의 발명품이자 본성의 반대말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문화 역시 생물학적인 기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거울뉴런이라 부르는 세포가 그것입니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게 하는 거울신경세포 덕분에, 인류는 서로를 모방하고 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협력적이고 집단의 의견을 따르는 개인들로 이뤄진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을 압도했기 때문에, 더 순응적이고 집단주의적인 개인이 선택되었습니다. 종교, 언어, 정치, 사회 제도 등 집단을 잘 결속시키는 문화를 발전시킨 집단이 성공한 것입니다. 즉, 유전자가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인류의 발전을 이끈 것이지요. 이를 유전자-문화 공진화라 합니다.]
2.4 호모 폴리티쿠스
[보수는 침팬지에 환호하고, 진보는 보노보에 열광합니다. 침팬지는 강한 위계과 경쟁 사회를. 보노보는 평등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진보가 생각하듯이 사회적 위계가 꼭 나쁜 것도 아니고, 보수가 생각하듯이 인류의 본성이 꼭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것은 아닙니다. 위계가 동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서열이 역설적으로 평화와 안정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서열이 공식적으로 정해지면 불필요한 다툼과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역설적으로 위계질서가 사회적 긴장을 해소해 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조금 더 고차원적인 지위 게임을 만들어냈습니다. 강압과 폭력에 기반한 위계보다는 명성과 인기,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통해 권력과 지위를 획득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사회성은 경쟁과 이타주의, 양 극단을 발전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생물학적으로 필연적인 결과였던 셈입니다.
3.1 보수의 뇌와 호르몬
[보수주의자를 만드는 무언가가 있을까요? 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에 비해 편도체가 크고 더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편도체는 공포와 공격성을 관장하는 중요한 부위입니다. 보수는 진보에 비해 더 두려움과 불안을 쉽게 느끼기 때문에 안정과 질서를 추구하는 성향이 더 강합니다. 따라서 공동체에 소속되려는 열망이 더 크고 그 속에서 안정적인 자원과 높은 서열을 얻으려는 근원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보수주의자가 전통과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고 경쟁에 찬성하며, 변화보다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사랑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과 남성 호르몬으로 잘 알려진 테스토스테론도 보수적 가치에 크게 기여합니다.
3.2 보수의 도덕성
[보수주의자는 왜 애국심이 강하고 종교적이며 권위와 전통을 중시할까요? 보수주의자가 생각하는 도덕의 원형적 심리가 더 다양해서 그렇습니다. 충성심, 권위, 고귀함, 공정성은 보수주의자가 가지고 태어나는 도덕 목록입니다. 그렇기에 보수주의자는 집단에 충성하고 희생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기에 종교적이고 신앙심이 강하기도 하죠. 또한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그렇지 못한 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인과응보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4.1 진보의 뇌와 호르몬
[진보주의자는 왜 전통과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고 자유롭고 변덕스러우며 평등과 부의 재분배를 주장할까요? 도파민 때문입니다. 도파민은 자극에 대한 쾌락을 부여해 무언가를 행동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호르몬입니다.
물론, 도파민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도파민은 세상을 인식하도록 어떤 패턴을 보게 만들어 사회적, 정치적, 계급적 문제의식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을 만들어 개혁과 혁명을 추구하는 사회 운동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도파민 과다분비자들이 진보주의자인 것입니다. 그들은 안정적인 삶을 거부하고 변화와 위험에 뛰어드는 투사들입니다. 인문사회과학 학자들이나 인권 운동가들 대부분이이 진보주의자인 이유기도 합니다.
4.2 진보의 성격
[도파민은 진보주의자들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개방성이라는 성격입니다. 개방성을 새롭고 낯선 경험을 좋아하는 정도로, 가치관과 행동 양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성격입니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책과 예술, 연극 등 교양적인 활동을 즐기고 클래식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휘력과 추론 능력이 좋고 지적 호기심이 커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반복적인 일상을 못 견뎌하기에 낯선 경험을 추구하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며, 자신이 사는 세계를 탐구하고 평가하려는 본능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많은 자극을 받아들이기에, 분류하고 판단하려는 욕망이 큰 것이지요. 따라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구조적인 불평등과 체제가 약자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여성 및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4.3 진보의 도덕성
[진보주의자의 도덕적 기준은 보수보다 훨씬 느슨합니다.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기지요. 진보주의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피해를 끼치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진보가 결과적 평등과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진보주의자들은 권위나 위계에 본능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어, 평등을 추구하고 불평등을 거부하는 심리적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전히 강자나 억압적 체제에 의해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여기지요. 자연스럽게 진보주의자들은 개혁과 변혁을 추구하고 소수자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5. 1 불평등이 미치는 것들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극심한 불평등이 개인과 사회 모두를 무너뜨린다는 때문이지요. 인간은 서열 동물입니다. 따라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받습니다. 서열이 낮은 영장류가 훨씬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이 나쁘고 수명이 짧은 이유입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반사회적 행동과 공격성을 표출하게 됩니다. 살인율, 자살률, 높은 사회적 고립도와 약자에 대한 혐오와 나타납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중독과 신경증적 증상을 보입니다. 우울증, 도박과 알코올 중독, 소비 만능주도 같은 맥락입니다.
반대로 불평등이 적은 국가일수록 수명과 행복도가 높고, 타인을 신뢰할 수 있으며 사회적 자본이 강합니다. 불평등과 공정 문제에 관해 보수와 진보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입니다.
5.2 양복을 입은 뱀
[왜 현대 정치는 국가를 막론하고 문제가 많을까요? 우리의 정치적 심리가 아주 오래전에 진화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으스대고 거만하며 키가 큰 지도자를 신뢰하는 이상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지도자들이 수렵채집인 시절 분쟁과 위기 상황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정치인은 싸이코패스 성향이 가장 높은 직업 중에 하나이며, 많은 정치인들은 공감능력이 낮고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세상이 고귀한 자와 천한 자로 나뉘고 자신은 전자에 속한다고 믿죠.
HEXACO 성격유형에 따르면, 이들의 정직성은 매우 낮고 대단히 권위적이며 비윤리적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평범한 사람까지 권력을 쥐면 그렇게 변해간다는 것이지요. 보수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양복을 입은 뱀을 찾아내고 견제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