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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핀치

보수의 성격

by 교양이



1832년 10월 하순, 비글 호가 플리머스 항에 정박했다. 바쁘게 짐을 싣는 선원들 사이에서, 한 청년이 하릴없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힘쓰는 게 어설퍼 베테랑 선원들에게 욕을 먹고 쫓겨난 뒤였다. 청년의 업무는 두 가지였다. 선장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박물학자 흉내를 내는 것. 두 가지는 나름 나쁘지 않게 해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나름의 교양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니던 의대를 때려치웠고, 사냥 말고는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사제나 되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신부 수업을 받기 전 세계여행이나 다녀올 요량으로 배에 올라탄 뒤였다. 아버지에게 가족의 수치라는 말을 들었던 그 청년의 이름은 바로 찰스 로버트 다윈이었다.


다윈이 진화라는 아이디어를 얻은 건 핀치새 덕분이었다. 핀치는 갈라파고스 섬에서 살며 열매를 쪼아 먹는, 참새를 닮은 귀엽고 작은 새다. 그때 처음 핀치를 본 다윈은 섬마다 부리의 크기와 모양이 다른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떤 핀치의 부리는 뾰족했고, 어떤 핀치의 부리는 뭉툭했다. 창조론에 의하면 모든 종은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기에 조금씩 다르게 생긴 핀치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의문을 느낀 다윈은 크고 작은 섬을 돌며 핀치가 어떤 열매를 쪼아 먹는지 관찰했다. 예상대로 핀치가 쪼아 먹는 열매의 크기가 섬마다 달랐다. 다윈은 핀치의 조상이 모두 같지만 시간이 지나며 부리 크기가 달라지도록 진화했다고 결론지었다. 진화론의 시작이었다.

진화론을 아는 사람들은 보통 핀치의 부리를 자연선택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자연선택이란 DNA의 오복제로 인해 달라진 형질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크고 질긴 열매가 달리는 섬에서는 뭉툭한 부리를 가진 핀치가 자연선택된 것이다. 하지만 같은 섬에서도 조금씩 다른 부리를 가진 핀치가 있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방황선택이다. 방황선택이란 자연선택의 추가 움직이며 같은 종 내에서 다양한 기질을 가진 개체가 퍼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선택은 종의 보편적인 특성을 말하지만, 방황선택은 개체 간의 다양한 차이를 결정짓는다. 즉, 방황선택은 다양한 성격을 만든다.


동물들에게서도 성격 차이를 볼 수 있을까? 물론이다. 심리학자들이 애완 물고기 구피를 대상으로 잔인한 실험을 설계했다. 개체마다 어느 정도까지 천적을 경계하는지, 구피의 목숨을 걸고 실험을 한 것이다. 실험 결과, 포식자를 경계하는 정도는 구피마다 다 달랐고,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약한 경계 그룹은 모두 잡아먹혔고, 강한 경계 그룹의 구피 8마리만이 살아남았다. 즉, 5대 성격특성(Big Five) 중 정서적 안정성(Emotional Stability)이라 부르는 겁이 많은 물고기와 겁이 없는 물고기가 있었던 것이다.


공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박새에게도 성격이 존재한다. 동물학자 닐스 딩게만스는 박새마다 탐구 행위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박새들 사이에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더 많이 뛰고 날아다니는 박새가 있었고, 별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느린 박새도 있었다. MBTI의 외향형(E)이나 내향형(I)과 비슷하다. 박새 사이에서도 인싸와 아싸가 존재했던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구피는 포식자를 경계하는 게 유리하고, 박새는 먹이를 구하고 짝을 찾기 위해 활발한 게 유리하다면, 겁쟁이 구피와 인싸 박새만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겁이 없는 구피와 아싸 박새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기후나 강수량 같은 생태 환경은 매번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겁쟁이 구피는 천적을 경계하느라 먹이를 찾거나 짝을 찾아 나설 여력이 없다. 에너지 넘치는 박새는 먹이와 짝을 찾을 가능성이 많지만, 매에게 잡아먹힐 확률도 높다. 박새들이 좋아하는 너도밤나무 열매는 많이 달릴 때도 있고 적게 달릴 때도 있다. 먹이가 풍부할 때는 덜 움직이고 짝짓기에 투자하는 느린 박새가 유리하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는 활동반경이 더 넓고 빠른 박새가 더 유리하다. 적절한 라이프스타일은 매번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빠른 박새와 느린 박새 모두가 자연선택되며, 다양한 성격을 가진 박새를 만든다. 우리의 성격도 마찬가지다.


좋은 성격이나 나쁜 성격은 없다. 모든 성격에는 장단점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성격은 차이일 뿐, 우월관계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신 성격은 행동의 일정한 패턴을 의미하며, 가치관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그중 어떤 성격은 도덕적,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학자 앨런 거버가 만 이천 명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5대 성격요인과 정치 성향의 연관성을 조사했는데, 정치 성향과 성격과의 상관관계가 소득이나 교육보다 크다는 점을 알아냈다. 성격의 차이를 이해하면, 왜 보수와 진보가 만들어지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가렛 대처는 1925년 영국 링컨셔 주의 독실한 감리교 신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대처는 시장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근면과 성실의 자세를 배웠다. 이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본격적으로 정치 일선에 뛰어들었고, 34세의 나이로 보수당 하원의원 후보로 공천받아 의원이 되었다. 이후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다 최초이자 최장수 여성 총리가 되었다. 대처는 ‘철의 여인’ ‘신자유주의 마녀’로 불리며 영국 보수당의 정신적 지주이자 좋든 싫든 오늘의 영국을 설계한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대처는 노력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녀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변변한 기반 없이도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영국 정치계에서 총리까지 올랐으며, 윈스턴 처칠 이후로 가장 잘 알려진 보수 성향의 영국 정치인이다. 대처는 하루 18시간씩 일했고, 수많은 반대와 비난을 뚫고 국가를 개조하는 수준의 개혁을 이루어냈다. 그 과정에서 복지 정책을 폐기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등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다. 그래서 보수적인 정책을 대처리즘(Thatcherism)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처는 12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은퇴한 후에야 "나는 매일 전쟁과도 같은 하루를 보내야 했다"라고 회고했다. 대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노조를 탄압하고 빈부 격차와 지역 불균형을 초래했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조차도 대처가 열정과 노력으로 영국을 이끌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대처의 근면성과 타협하지 않는 신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은 분명 보수주의자가 좋아할 만한 가치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성향을 성실성이라고 정의한다.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일처리가 꼼꼼하고, 자제력이 높고, 신중하고, 계획에 따라 행동하고, 성취욕도 높다. MBTI로 따지자면 판단형(J)으로, 여행을 떠날 때 계획을 세우고 일정에 맞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겠다.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노력의 화신들은 사실 성실성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생리적으로 성실성이 높다는 건, 유혹과 충동을 절제하기 쉬운 신경 시스템을 타고났다는 뜻이다. 그들의 뇌는 충동을 제어하는 전두엽 영역이 특히 많이 활성화되어 있다. 결국 성실성은 어떤 목표나 원칙을 위해 당장의 욕구 충족을 억제하는 전두엽 메커니즘의 활성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성실성이 낮은 사람들은 전두엽의 통제 메커니즘이 약해기 때문에 마약이나 도박에 더 쉽게 빠져든다.


자연에서 충동을 절제하고 계획을 세우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물이 지금 여기의 포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프랑스 언론은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프랑스 정치인을 가리켜 음탕한 침팬지처럼 행동했다고 조롱하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이 충동대로 행동하는 건 자살행위다. 서열 사회에서 멋대로 살아가는 동물에게는 가혹한 처벌이 뒤따른다. 사회적 위계는 응징을 통해 개인의 탐욕을 자제시킨다. 도쿄의 타마 동물원에 있는 침팬지들은 딱딱한 마카다미아를 깨 먹기 위해 서열순으로 줄을 서서 차분히 기다리다가 금속 덩어리로 내려쳐 먹는다. 과정은 평화로웠지만, 질서 이면에는 처벌과 폭력이 숨어있기에 가능했다.


침팬지는 감정도 조절할 수 있다. 장난꾸러기 침팬지가 어린 새끼를 데려가면, 어미는 훌쩍이고 애걸하면서 자식을 돌려받기 위해 따라간다. 하지만 절대 뛰지 않고 차분하게 따라간다. 전력으로 쫓으면 나무 위로 도망가다가 새끼를 떨어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새끼를 돌려받으면, 그제야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시킨다. 동물에게 자제심은 필수적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근면과 끈기는 직업과 학업적 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능력이 다소 부족해도 성실한 사람을 더 좋게 평가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꾸준한 사람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룬다.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위스는 『그릿(Grit)』에서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IQ나 재능, 가정환경이 아니라 성공할 때까지 끝까지 해내는 그릿(끈기)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우리는 항상 천재를 동경하지만, 정작 성공한 사람들은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 그릿을 쉽고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게 바로 성실성이라는 성격이다.


또한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책임의식이 높고, 도덕적이고 규칙을 잘 준수한다.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고 믿으며, 그 기준에 맞게 살아가려 노력한다. 자제력이 뛰어난 그들은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멋대로 행동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는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고 계획을 짠다. 방은 항상 깔끔하고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다.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을 잘하고, 성취에 대한 동기도 가장 크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성공하기에 가장 유리한 성격이기도 하다.


물론 단점도 있다. 성실한 사람은 계획을 따르는데 집중하느라 유연성이 떨어지고 변화에 대한 대처가 늦다. 성취욕과 경쟁심이 강하지만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소홀해질 수도 있고, 계획에 쫓기듯이 인생을 산다. 선조들이 살던 때를 유추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수렵채집민으로 살아왔다. 지금처럼 학교와 직장에서 하루 8시간씩 정해진 규칙과 매뉴얼 같은 일을 묵묵히 견뎌내며 생존하고 번식한 사람은 없었다. 과거에는 현대 사회처럼 성실성이 더욱 큰 강점을 지니지 못했다. 물론 조상 시절에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딴 짓거리를 할 때보다 유리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과 변수가 넘쳐나는 야생에서 물소 떼가 지나갈 때 "오늘은 꿀 따러 가는 날"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초기 수렵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고부터, 성실성은 장점으로 더 부각되었다. 역사는 사유재산이 거의 없는 평등한 수렵 채집 사회에서 불평등한 농경 사회로의 이행이었다. 부족 사회가 점차 안정되고 체계적인 서열 사회로 발전하며, 매 순간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유형보단 절제하고 노력하며 자원을 축적해 가는 성실한 인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수주의자의 조상들이다.


정리하자면, 보수주의자는 노력과 성실을 강조하고, 애국심과 충성심이 높고, 사회적 규범과 예절을 중시하며, 지위와 경제적 이익을 향한 경쟁을 강조한다. 모두 성실성이 만드는 것들이다. 물론 안정과 질서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면 불확실하고 애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피 땀 흘린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주의자의 장점은 차고 넘친다. 이제는 그들의 성취욕, 정직한 삶의 태도, 충성심, 삶의 안전성, 도덕적 자제력에 대해서도 바라봐야 한다.


가끔은 보노보가 침팬지에게 배워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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