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던 코로나도 끝은 보였다. 아마도 독감과 같은 엔데믹으로 남을 모양이다.
다시 일상은 찾아온 듯했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한번 잠잠해진 경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날개를 펼치기엔 아직 움츠려든 어깨가 펴지질 않았다.
사실 이런저런 말은 핑계다.
나는 지금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버는 만큼 맞춰 쓰는 법을 터득했고,
다시 숨 가쁜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날이 밝을 때 출근해 밝을 때 퇴근하는 이 선순환을 끊어내고 싶지 않았다. 느긋하게 10~11시쯤 출근해
4시까지 예약된 스케줄을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간다.
일에 에너지를 다 쏟지 않았기 때문에 밝은 얼굴로 아이를 맞이할 수 있다.
가끔 외식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가족과 저녁시간을 보낸다. 그림같이 완벽한 일상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순 없다는 생각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이 딱 좋다는 생각이 들 때면 왜인지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지 않은 기분이다.
지겹던 마스크도 해제됐다. 텅 비었던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가게마다 활기가 돋았다.
잠잠했던 핸드폰이 바빠졌다. 다시 시작된 모임과 여행으로 나도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지니 그제야 나를 다시 찾은 것 같았다.
늦은 저녁 해가지고 퇴근하는 차 안에서 괜스레 웃음이 났다. 그래 이거지.
평온하고 한가한 날들도 물론 좋았다. 하지만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개며 그 많은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이 기분은 말할 수 없게 좋다. 하루를 잘 마쳤다는 안도감과 해냈다는 쾌감이 있다.
다만, 이제 체력이 쇠약해져 늘 이렇게 일할수는 없다는 게 문젠데
다행히도 그 정도로는 고객이 없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지만 지금 체력으로는 다행이다.
오랜만에 통장잔고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역시 일이란 건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하다.
그즈음 갑자기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나긴 상승 끝에 시작된 하락이었다.
사실 나야.. 워낙 재테크에 관심이 없어 잘 모르기도 했고,
그나마 집을 마련해 볼까 하는 시기엔 집값이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날뛰고 있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으로 올라버린 집은 이제 내 것이 아니려니 마음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손 놓고 있는 사이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남편 발령이 확정돼 주말부부를 끝내게 됐고, 코로나가 끝나면서 수입이 늘었다.
아이도 이제 곧 초등학교를 갈 예정이라 지금쯤 집을 마련하면 금상첨화였다.
본격적인 집 보기가 시작됐다.
인터넷으로 대략 집을 알아보고 주변 애기엄마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 부분은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라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들을 편견 없이 모두 들었다.
다들 비슷한 또래를 둔 엄마아빠들이라 모두의 초 관심사는 당연 집이었다.
만날 때마다 비슷한 얘기를 하는데도 지겹지가 않았다.
또 다른 문을 연 것 같았다. 세상에나 내가 사는 지역에만 수십 개가 넘는 아파트가 있었다.
그 많고 많은 아파트들이 이런저런 이해관계로 인지도가 달라지고 값이 달라졌다.
생각 없이 지나치던 아파트들이 그제야 또렷이 보였다. 이 중 내가 살아갈 집도 어딘가에 있겠지
임장을 다니면서 생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가격에는 이유가 있었다. 집은 싸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아이가 자랄 환경이라는 게
내가 정한 아파트에서부터 시작된다니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어느 정도 이미 정해져는 있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집중 가장 좋은 곳으로 가면 된다.
일을 더 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생겼다.
목표나 목적이 생기는 걸 좋아한다. 그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라면 더욱더.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내 집 마련이라니.
내 집 마련으로 인한 부채에 대한 부담감도 내려놓았다. 서로 열심히 일한다면 충분히 채울 수 있다.
평소 성격으론 이미 이삿짐을 싸고도 남았지만 신중하자며 나를 다독인다.
아마 다신 없을지도 모를 큰 지출이다. 진중한 남편 덕에 서두르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내 집 마련의 꿈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