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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Aug 23. 2016

공시생 일기 - 7 - D의 시험일

공감 소설

D는 바나나 껍질을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그의 10번 째 시험이 막 끝났다. 화창한 4월의 봄날은 악몽처럼 느껴졌다. D에게 이제 누구도 시험을 잘 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새벽 기차역 편의점에서 3천원 씩이나 주고 산 허쉬초콜릿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어떤 변명도 떠올리지 못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D는 허기가 느껴졌다. 문득 배고픔이 사치 같았다. 그리고는 한없이 궁색해졌다. 몹시 어지러웠다. 깊은 곳에서부터 속이 뒤집혔다. 목구멍에서는 썩은 돼지 창자에서 알을 까고나온 구더기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꾸에엑. 땅이 D의 얼굴로 돌진했다. 비틀거리며 운동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웃는 얼굴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순식간에 운동장에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배웅나온 사람들과 시험을 마친 사람들이 뒤섞여 한바탕 공포의 축제를 벌였다.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였다. 그들은 그늘로 자리를 잡았다. 그늘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끊임없이 담배를 뻐끔거렸다. 필터까지 태워 마시는 자도 보였다. 하늘 한 번 바라보며 푸우. 내뿜는 연기에 눈이 매운지 눈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들은 서로 위험한 존재였다. 멀찌감치 안전거리를 두고 있었다. 머리에 새집이 지고 수염이 덥수룩한 자가 담뱃불을 퉁겼다. 불꽃은 마른 풀숲에 떨어졌다.

머리에 새집을 가진자는 풀숲에서 불꽃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눈빛을 띄엇다. 고개를 180도 꺾고서 계속 응시했다. 아쉬운 듯 자꾸 돌아봤다. 공포의 축제는 분노의 축제로 바뀌었다.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동시에 목구멍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다. 보다못한 유단자가 옆차기를 날렸지만 누구도 맞지 않았다. 축제 참여자들은 눈을 흘기며 스르르 피해갔다. 마치 유령들 같앗다. 유령의 행진은 길게 이어졌다.

D는 익숙한 구부정한 어슬렁거리는 발걸음으로 유령의 행렬로 섞여들었다. 지박령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고정된 자리로 돌아가는 고행의 길에 오를 것이다. 다시 오를 고행의 길 끄트머리에 영광의 깨달음이 있을지 또 다른 공포의 축제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모두 다 알았다.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유령의 행렬을 구경하는 백발의 사람들은 무슨 행사라도 열렸는지 더듬이를 꺼내 꽂았다. 더듬이를 먼저 꽂은 백발의 사람이 유령들의 정체를 주워들었다. 온갖 푸념을 늘어놨다. 말세야 말세. 배가 불렀어 배가. 유령들이 들으라고 쉰 말을 뱉는다. 유령들은 눈을 흘기며 지나갈 뿐. 

방송국에서 나온 카메라가 행렬을 갈라놓는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영혼을 빨아들여 삼켜버릴것 같이 생긴 커다란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과 기자는 누구라도 좋으니 인터뷰를 하자고 매달린다. 그러나 눈을 흘기고 지나칠 뿐이다. 기자는 새우눈을 뜨고 바바리 코트 안 주머니에서 5천원권 문화상품권을 꺼내 흔들기 시작한다.

눈빛이 돌아오는 유령들이 몇몇 달려든다. 익명이 되느냐 모자이크가 되느냐 열심히 물어보지만 바바리코트는 미소를 남길 뿐이다. 커다란 카메라에 압도된듯 주눅이 든 유령의 어깨는 땅에 닿았다. 의기양양한 바바리코트는 카메라맨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구겨진 문화상품권을 3장이 잡힌다. 기자는 엄지에 침을 바른다. 그래도 자꾸 3장이 딸려 올라온다. 엄지 손가락에 침을 뱉는다. 됐다. 1장은 다시 구겨져 돌아들어간다.

유령은 살아난 눈빛으로 눈깔을 뒤룩거리며 3장을 외쳐보지만 목소리가 기어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3초 후 문화상품권 2장이면 충분하다며 자기 가치 평가를 마친다.

D는 다시 바나나를 깐다. 껍질을 유령의 행렬 속으로 던져버린다. 누구라도 밟아라. 바나나 껍질이 낙하한 곳에 공허한 구멍이 생겼다. 유령들은 껍질을 밟는 순간 이 대단한 행렬에서 벗어나게 될까봐 필사적으로 피해간다. D는 실망했다.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바나나 껍질은 검은 곰팡이로 덮여갔다. 바나나 과육이라도 좀 줄걸그랬나.

한 쪽 귀에서 잡소리가 들렸다. 고장난 이어폰이 귀를 틀어막고 한 쪽에서만 소리응 냈다. D는 귀에서 신경질적으로 이어폰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며 이어폰에게 내뱉을 수 있는 모든 저주를 퍼부었다.

기차에도 여기저기 유령들이 앉아있다. D는 더이상 정신을 가누기 힘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었다. 꿈속에서 D는 시험은 누가 왜 만든걸까 반복해서 생각했다. 주위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붙들고 내게 답을 달라고 찾아다녔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자는 모두 D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땀이 삐질삐질 났다.

D는 공간이 자신의 주위로 돌돌 말려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양팔을 경계에 대고 부들부들 떨면서 저항했지만 공포는 D를 현실로 밀어냈다. D는 다시 돌아갔다. 도서관으로. 또는 독서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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