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톺아보기
머리카락을 자를 시기가 지나면 귀밑으로 머리카락이 삐죽거린다. 나의 미용실의 선택 기준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다. 한 때 미용실 선택 기준이 달랐던 시절 이야기이다.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미용실에 다녔었다. staff 라는 글자가 등에 박힌 black shirts를 입은 '디자이너'에게 외투를 건낼 수 있던 미용실에서 앳된 staff 에게 샴푸 서비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갓 20세 쯤 되어보였다. 묘한 긴장감이 얼굴에 묻어있었다. 군기가 빠짝든 이등병의 표정이었다. 하라는대로 눕듯이 앉았다. 편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한 자세로 누워 개수대에 목을 기댔다. 목에 힘을 빼라고 '솔' 톤으로 나의 목 근육에게 말하지만 목에 힘이 빠지지 않았다. 어쨌든 물 온도가 괜찮냐는 말부터 개인적인 근황까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음 질문을 던졌다. 샴푸 중에 말이다. 나는 수건을 얼굴에 덮고 있었다. 대답은 했지만 대화는 진척이 없었다. 준비된 질문과 짧은 답변이 몇 번 오갔다. 너무 일찍 끝난 질의응답이 원인이었을까 이등병의 열정이 손끝에 너무 집중되었다. 두피에 저릿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샴푸 향이 나는 수건 아래에서 생각했다. 내가 샴푸 서비스에 태클을 걸면 무서운 화장을 한 옆에 있는 staff 들이 샴푸 이등병을 구석진 창고로 끌고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두피의 통증은 참을만 했다.
앉은 그 자리에서 등받이만 세워 가위가 아닌 칼날로 커트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아주 빠른 시간에 커트가 끝났다는 통지가 도착했다. 고맙다는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cut staff는 사라졌다. 바로 이어서 wax staff 가 날아왔다. 앞머리를 몇 번 쥐어짜고 옆 머리 뒷 머리를 꾹꾹 누르고 돌아갔다. 머리는 산발에 가까웠고 옆머리와 뒷머리는 두피에 붙인 스타일이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묘하게 불편했다. 이제 이런 미용실은 그만 와야겠다 싶었다. 차라리 샴푸 이등병에게 다시 머리를 감겨달라고 싶었지만 샴푸 이등병은 아까 내게 했던 똑같은 질문을 다른 손님에게 건내고 있었다. 아쉬웠다. 돈을 치르며 샴푸 서비스가 좋았다고 카운터 staff 에게 말하고 번잡한 거리로 나왔다. 길을 걷기에도 누구를 만나기도 부끄러운 머리라서 그날은 집에 일찍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