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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presario Apr 08. 2022

문화재단 리더쉽의 밧세바 신드룸



"리더쉽의 윤리적 실패"


권력을 가진 사회 지도층의 윤리적 타락을 가리키는 밧세바 신드룸이 있다. 

1993년 미국 비즈니스 윤리저널에 실린 논문 ‘밧세바 신드롬(Bathsheba Syndrome)’은 일부 지도자들의 실패를 도덕성에서 찾은 바 있는데, 성경 속 다윗이 부하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탐하여 임신시켜 이를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를 죽게 만든 일화에서 유래했다. 

누구에게도 제약받지 않는 지도층의 권력은 모든 걸 은폐할 수 있을 거란 오판으로 이어진다. 

정보 또는 사람에 대한 특권적인 접근 가능성은 리더에게 더욱 제왕적 권위를 안기게 되고, 이를 리더가 악용하여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특히,  밧세바 시드룸은 리더가 개인적, 조직적 성공이 주는 만족감으로 인해 본연의 목표를 상실했을때 자주 출몰하는 유령이 된다. 예컨대, 남성 사회 지도층들이 성추문으로 구설수에 오를때 세간에 꼭 회자 되는 말이 있다. "남자가 돈, 권력, 명예를 가지고 나면 '성'에 탐닉하게 되고 꼭 사고를 친다" 남성의 전형적인 밧세바 신드룸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화제를 공공 문화예술기관, 지역문화재단으로 돌려보자. 

우리는 밧세바 신드룸으로 인해 몰락하는 리더와 조직을 자주 목격한다. 

리더를 둘러싼 각종 채용 비리, 성추문, 특혜 시비 등이 신문의 문화면을 장식한다.   

높은 책임성과 투명성이 근간이 되어야 할 지역문화재단이 리더쉽의 윤리적 실패로 인해 조직이 도덕적 지탄을 받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리더쉽의 윤리적 실패는 조직 내 다양한 문제를 야기, 결국 문화재단 조직은  지역사회의 신뢰를 잃게 되어 몰락한다. 밧세바 신드룸으로 인한 조직 몰락의 과정은 더욱 치명적이다. 조직 구성원간 '소통'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제약받지 않는 리더의 독선적 운영은 조직 구성원들을 일차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어 재단 운영이 경직화된다. 리더는 '내로남불' 이미지를 직원들에게 각인 시킨다. 

구성원들의 문화재단 정책 및 사업 개선과 발전을  위한 '으쌰으쌰'가 사라진다. 리더가 주재하는 영혼없는 각종 회의에 회의를 느낀다. 

조직은 분열한다.  영혼없이 리더를 위해 자진 충성하여 리더의  윤리적 실패를 더욱 부채질 하는 부류가 생겨난다. 조직에 대한 충언을 하는 직원들이 하나둘 내부 갈등으로 재단을 떠나게 된다. 

이런 과정을 지켜 보는 대다수의 직원들은 소통을 포기하고, 시키는 일만 영혼없이 하게 되고, 

결국 리더가 바뀔때까지 참고 기다린다는 미명하에 '복지부동'하게 된다.

문화재단의 밧세바 신드룸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가지만 명심하자. 

문화재단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조하기 이전, 

리더는 자신의 '책임성과 투명성'에 대해 자숙해야 한다. 

윤리적으로 실패한 능력있는 리더보다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윤리적으로 성공한 리더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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