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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서 Jul 29. 2022

잠이 오는 집

내가 가장 잘 잘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내 친구들은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간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각자 혼자 살고 있는 집이 있지만, 금요일 밤에 우리 집에서 술 한 잔 나눠 마시고 자고 간다. 술 한 잔에 일주일치 고난을 섞어 털어내고 나면 마음은 가볍지만 배는 무겁다. 술기운이 올라와 나른해지는 데다 부른 배를 안고 늦은 밤에 집에 가기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게다가 대중교통이 다니는 시간까지 일주일치 욕을 다 풀어내려면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친구들끼리 모인 밤엔 대체로 1차는 식탁에서, 2차는 몇 발자국 떨어진 거실 소파에서 떠들다가 자고 가는 게 일상이다.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친구 A도 늘 이 금요일 모임에 늘 함께한다. 반려묘가 새벽마다 울어서 자꾸 깨기도 하고, 또 잠이 드는 것도 오래 걸려 잠을 자도 늘 피곤하다고 했다. 잠자리가 바뀌면 더 잠드는 게 어려울 텐데. 나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집주인으로서도 친구가 우리 집에서 잘 잘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이불을 여러 겹 겹쳐 깔고, 좋아하는 바디필로우도 가져다줘야겠다고, 여러 방안을 고민했다. 


    "야. 너무 웃겨"


    2차로 아이스크림과 남은 술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같이 새로 시작한 예능을 보고 있다가 습관처럼 옆에 앉은 A를 가볍게 쳤다. 그리고 옆을 봤는데 A가 방금 뜬 눈을 끔뻑하더니 어설프게 따라 웃는 척했다. 자긴 안 잔다고. 잠시 눈을 감고 있을 뿐이라던 A는 몇 분 후엔 깨어있는 척도 않고 그대로 내리 12시간을 잤다. 그다음 날 아침 부스스한 머리를 한 A를 보며 깔깔 웃었다.


    "네가 알고 있는 불면증의 정의가 나랑 다른 거 아냐?"


    A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우리 집에 흐르는 기운이 자기랑 맞는다고 풍수지리설에 입각해 변명했다. 그 후로도 A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아주 긴 시간 푹 잘 자고 집에 간다. A 뿐만 아니다. 다른 방문객들도 우리 집에서 아주 푹 자고 간다. 손님 방도 따로 없는 데다가 오래된 이불들을 거실에 대충 깔아주는데도 잘 자고들 간다. 진짜 우리 집이 숙면하기에 좋은 조건인가 보다. 


    그런데 나는 이 안락한 집에서 잘 자지 못한다. 친구들이 잘 자고 있는 시간에도 나는 바로 잠들지 못한다. 아주아주 피곤한 경우가 아니면 잠들기까지 최소 한 시간은 소요되고, 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메운다. 상상의 나래나 걱정 타래가 줄을 잇기도 하고, 내일 아침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너무 이르게 리스트업이 된다. 비싸게 장만한 토퍼와 침구로 몸은 안락한데, 마음은 쉬지 못한다. 마음이 편하게 누워 쉬기에는 우리 집이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본가 침대는 우리 집 침대보다 훨씬 낡고 딱딱하다. 나와 동생이 독립하기 훨씬 전부터 쓰던 침대다. 매트리스가 10년 가까이 되었고, 침대 프레임은 거의 20년째 쓰고 있다. 앉을 때마다 소리도 삐걱거리고, 오래 누워 있으면 허리도 아프다. 침구랄 것도 없다. 시장표 홑이불이 여러 장 깔려있고, 베개 솜도 푹 꺼져있다. 좁은 집에 식구들이 들어차면 와글와글 시끄럽고, 복도식 아파트라 밖에서 나는 온갖 소음이 들리며, 암막 커튼도 없어서 햇빛이 그대로 내리쬔다. 악조건임에도, 신기한 건, 잠이 너무 잘 온다는 것이다.


    아버지 생일 겸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에어컨을 잘 틀지 않아 찝찝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왜 이사를 하지 않는 것이며, 에어컨이라도 최신 제품으로 바꾸라고 해도 십몇 년 동안 쓴 낡고 전기세 많이 나오는 에어컨을 고수하는 고집은 지겹다고 말이다.  내가 이래서 본가를 자주 못 온다. 이거 봐라. 잠이 오지도...


    밤 11시에 누워 오후 1시에 일어났다. 퉁퉁 부은 얼굴로 부스스 귀신같이 일어나서 할머니 방으로 직행한다. 배도 안 고프더나라고 묻는 할머니한테 안겨서 좀 더 누워있다가, 아빠를 졸라 커피를 얻어먹는다. 엄마가 오면 오후 1시에 일어났다고 이실직고한다. 자알 했다고 타박하면서도 거하게 차려준 점심을 먹고 누워있다가 또 잔다. 저녁에 산책 갔다 와서 과일 먹고 또 잔다. 수면제라도 탄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잠이 온다. 




    쉬는 날이라고 해도 나에게 우리 집은 현실의 공간이다. 빨래들, 설거지 거리들, 오늘 운동 가야 하는 데 싶은 마음, 물을 줘야 하는 식물들, 청소, 연습을 종용하는 나의 피아노... 휴일로 미뤄둔 의무들이 우리 집 공간에는 가득 차 있다. 포근하고 푹신한 침대나 소파에 누워있다 보면, (실제로 하진 않지만) 식빵을 만들어서 내일 회사에 가져갈까?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든다. 그런데  벌써 오후 다섯 시다. 발효하고 뭐하다 보면 한 밤중에야 끝날 것 같다. 그래도 만들어? 그럼 지금 시작해야 하는데? 아 그럼 운동 갔다 오는 시간이랑 발효시간이랑 딱 맞진 않겠다. 그럼 몇 시에 운동 가야 하나? 다음 주엔 점심 도시락을 뭘 싸가지? 장은 봐놨나? 


    이어지는 생각들이 누워있는 나를 게으르다 채근한다. 휴일인데 누워만 있을 거야?


    하지만 본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가져간 책을 읽거나 엄마랑 드라마 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의무는 하나도 없는 그 공간에서 마치 손님처럼 푹 쉬어갈 수 있었다. 회사 걱정도, 미뤄둔 취미 활동도 무엇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머리가 비워진다. 빈 마음으로 낡은 침대에 누워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잠이 밀려오는 것이다. 

   


    

    나의 불면과 잦은 걱정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아빠는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자주 간다. 그 나이대 중년 남성들과 다르게 혼자서도 동남아 오지로 여행을 다닌다. 외국어는 조금도 못하면서도 말이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아빠의 수면 상태를 걱정한다. 집에서도 잠을 잘 못 자는데 나가서, 그리고 그 더운 동남아 오지 낡은 호텔에서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매일 같이 물어봤는데 아빠는 너무 잘 잤단다.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한결 젊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한테도 본가는,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의무로 가득 차 있다. 평생을 부양해온 할머니와의 매끄럽지 않은 관계, 돈 문제들, 노후 대책, 자식들 걱정, 나라 걱정 등등으로 아빠 역시 늘 마음이 쫓긴다. 아빠 역시 동남아 오지에선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그저 밥 먹고 관광하고 자는 것 밖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겠지. 의무로부터 강제로 비워지는 순간 한국에선 어려웠던 숙면이 가능해졌다. 


    



    누가 종용한 것 도아닌, 스스로 짊어진 삶의 걱정들을 덜어내는 것이 숙면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란 걸 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세요.라는 충고는 도대체 어떻게 따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자동으로 스며드는 마음을 어떻게 비운다는 말인가.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밀물처럼 생각이 밀려오는데 어떻게 막으란 말인가. 


    인간의 자유 의지가 소용없을 때는 나를 둘러싼 물리적 공간을 바꿔봐도 좋다. 익숙한 물건들은 가끔 친숙함을 가장해 슬쩍 나를 온전한 휴식으로부터 방해하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과일 : 썩을게 
빨래 바구니에 가득 찬 수건 : 쉰내 날게
안락해 보이는 침구 : 먼지 날게
분명 물 준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식물들 : 목말라... 죽을게 
오븐 & 피아노 : 써라

   

     새롭지만 낯설고 불편한 곳에 진정한 휴식이 있을 수 있다. 아마도 긴 휴식은 아니겠지만, 짧은 쉼이 간절할 때는 집에서 벗어나 거추장스러운 일상의 의무를 잠깐이라도 잊어보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다. 안락한 침구에서 벗어나 마음이 가장 가벼운 곳으로 향하자. 내가 잠이 잘 오는 곳, 그곳이 내 마음이 가장 가벼워지는 공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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