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을 연속해서 달리는 데 성공했으나, 조금 보태서 죽을 뻔했다. 30분을 달린 직후 비로소 42.195 킬로미터를 달렸던 그 그리스의 병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5킬로가 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아무튼 죽을 각오로 달렸다는 말이다.
고작 그 거리를 달려놓고 넘어갈 것처럼 거친 숨을 내쉬는 꼴은 내가 봐도 참 멋이 없었다. 내 망상 속의 멋진 러너는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하며 긴 숨을 한 두 번 내쉬고도 심박이 돌아오는, 아주 가벼운 운동을 했다는 투로 집에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기침까지 해서 산책하던 사람들이 돌아보는 일은 다시없도록 하고 싶었다.
30분을 더 수월하게 달리고자 했던 작은 소망은 '런데이'의 [30분 달리기 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30분 달리기 능력 향상]은 이전 [30분 달리기 도전]처럼 주로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이점은 속도를 조절하며 달리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30분을 연속해서 달리기는 아주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걸을 수' 있는 트레이닝 플랜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이 프로그램을 모두 완료한 후에는 30분 달리기가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30분 달리기 능력 향상]은 4분 40초를 달린 후, 20초 남짓 '빠르게 달리'는 훈련도 포함되어 있다. 보이스 코치는 최대 속력에 80%가량으로 빠르게 달리라고 했는데, 난 이미 보통 속도 달리기에서 최대 노력의 80%를 짜내는 와중이었다. 100%, 전력으로 달려야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전력질주 해본 경험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지하철을 아슬아슬하게 타게 될 때? 신호등 앞에서? 그때도 '전력'으로 달리진 못했다. 다칠까 봐 염려도 되고, 몸도 따라주지 않았기에 그냥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빠르게는 어떻게 달렸더라부터 떠올려야 했다. 보폭을 어느 정도로 벌려야 하는지, 어느 정도로 힘으로 지면을 차올려야 하는지, 기억 속에 희미하게만 남아있었다. 전혀 날렵하지 않은 이 몸으로 더 속도를 내도 되나?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해결책은 없었다.
빠르게 달리기를 시작하라는 알림음과 함께 그냥 내달렸다.
땅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몸이 앞으로 빠르게 옮겨졌다.
우와! 내가 달린다.
힘들지도 않았다. 근 10년 만에 최대 보폭, 최대 빈도로 다리를 움직이는 감각이 신기하기만 했다. 고등학교 무렵까지 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오래된 기분이 되살아 났다.
진짜 내가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에 여일(강혜정 분)의 대사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래 이래 팔을 빨리 휘저으면, 다리도 빨라지미.
다리가 빨라지믄 팔은 더 빨라지미.
땅이 뒤로 막 지나가미...
난 참 빨라.
<웰컴 투 동막골(2005)>
정말 그랬다. 팔을 빠르게 휘저으니까 다리가 더 빨라졌고, 그래서 더 팔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됐고, 다리도 더 빨라졌다. 어떤 동력을 이용하지 않았는데, 풍경이 평소와 다른 속도로 바뀌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짜릿했다. 나도 빠르게 달릴 수 있었구나. 잊고 있던 육체의 중요한 기능 하나를 되찾았다. 기분이 날아갈 것 만 같았다.
빠르게 달리기가 포함된 [30분 달리기 능력 향상]을 총 두 번 완료했다. 두 번의 '능력 향상 코스'로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굳게 믿었다. 좀 더 빠르고, 좀 더 안정된 심박수로 달렸을 것이라고! 그런데 다시 찾아본 기록은 나의 믿음에 부합하지 않았다.
향상된 건 능력이 아니라 기분이었다ㅎㅎㅎㅎ
비록 더 '잘' 또는 더 '수월히' 달리게 되진 못했지만, 달리기를 계속하는 데는 아주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먼저, 달리기 자체에 익숙해졌다. 달리기에 왕도는 없다고들 한다. 그냥 많이 달릴수록 느는 정직한 운동이라고. 실력이 늘 만큼 많이 달린 건 아니었지만, 4~5킬로씩 12번을 더 달리는 과정에서 달리는 행위가 일상이 되었다.
또한, 2주 코스로 짧게 구성되어 있어서 훈련의 성취감을 금방 얻을 수 있다. 달리기를 한 동안 하지 않다가 다시 시작하기에도 좋다. [30분 달리기 도전] 프로그램을 다시 하라고 했으면 아마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마치 2주 안에 다시 30분 달리기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급행 코스 같아서, 망설임 없이 선택했었다.
비로소 '멈추면 더 힘들어!'의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건 분명 재밌었지만, 인터벌 트레이닝 후반에는 너무 힘들어서 그냥 달리기와 빠르게 달리기의 속도 차가 거의 나지 않았다. 10분씩 쭉 달린 날이 덜 힘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걷는 세션을 늘 좋아하고 바랐는데, 드디어 '걷기' 보다 '달리기'를 조금 더 선호하게 된 순간이었다.
기대한 것처럼 나의 달리기의 능력을 향상해주진 못했지만, 덕분에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드문 드문이나마 계속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 두 달 멈추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도 해주었다. 앞으로도 달리기를 계속해나가는 데 있어서의 나의 중간 저장 지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