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그곳의 과거를 들추어내고 싶어 진다. 어떤 토대 위에서 지금의 문화가 만들어졌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여행할 때는 두꺼운 합스부르크 역사책을 싸가지고 갔었다. 나무위키도 큰 도움이 된다.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참으로 놀라운 집단지성의 힘이다. 그리고 꼭 빼먹지 않고 들리는 곳이 있으니 바로 박물관이다.
우리는 부산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해운대, 태종대, 광안리가 아름답다는 것 말고. 돼지국밥과 밀면이 맛있다는 사실 말고. 부산의 도로는 왜 이리 복잡한 것일까. 부산은 왜 부산일까.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부산박물관을 찾았다. 부산박물관은 전형적인 박물관의 모습이었다. 꽤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로 보였는데, 찾아보니 1978년 개관이라고 한다. 박물관에 가면 우리는 쓰인 글자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모든 영상을 끝까지 시청한다. 어떤 박물관이라도 하루 종일 있을 수 있다. 부산박물관의 규모는 꽤나 컸기 때문에, 우리는 동래관(구석기시대 ~고려시대)은 우선 패스하고, 조선시대 이후 역사가 전시된 부산관을 살펴보았다.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부산이 중심인 근현대사였기 때문이다.
부산은 원래 부산포와 부산진성이 위치하던 일부 지역을 부르던 이름이었다. 왜관이 위치했던 이곳은 일본인들의 주요 거점 지역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 이 부산을 중심으로 부산부가 신설되면서 지금까지 부산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신라시대부터 불리던 이 지역의 원래 이름은 동래이고, 지금의 동래구가 그 중심지였다. 부산이라는 지명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쓰인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 동래라 부르고 싶어졌다. 하나 이미 부산이라는 이름에 정이 들어버렸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주요 도시였던 것 치고 부산에 남아 있는 흔적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용두산 공원 일대가 일본인들의 주요 거주지였고,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신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흔적이 사라졌다. 신사로 오르던 계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건 6.25 전쟁 때문일 것이다. 전쟁 당시 상당수의 피난민들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원래 47만 명이었던 인구가 88만 명까지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산에는 피난민 정착지가 많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이출우검역소로 사용되던 소막사를 피난처로 삼은 우암동 소막마을,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에 있던 비석을 이용해 집을 지은 아미비석마을 그리고 감천문화마을, 흰여울문화마을 모두가 피난민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살아남기 위해 주변의 재료를 이용해 집을 짓다 보니 그 이전 역사의 흔적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산의 도로가 복잡한 이유다. 살 곳이 먼저 생기고 그곳을 다니기 위한 도로가 나중에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근현대의 부산, 참 다사다난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이상 복잡한 부산의 도로에 불만을 가질 수가 없다.
인스타에서 우리 동네 골목투어 상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이드와 함께 최대 20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동네를 걸으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원하는 날짜가 마감이 될세라 나는 서둘러 두 명을 예약했다.
가이드와 문자로 만날 장소를 정했다. 수영팔도시장 앞이었다. 약속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와 같이 투어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저기 두리번거리며 시계를 보고 있는 저 남자일까. 아니면 가만히 서서 음악을 듣고 있는 저 여자일까. 잠시 후 가이드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고, 우리는 만났다. 쇼핑백을 들고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가이드 곁에 다른 이들은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늘 투어 하는 사람이 저희밖에 없나요?”
“네, 두 분만 예약하셨어요.”
설마 했는데, 진짜 우리뿐이었다. 가이드는 이 프로그램이 부산에 관광온 외국인을 대상으로 기획되었다고 했다. 보통 콘퍼런스가 끝나고 시작하기 때문에 벡스코에서 만나 출발한다는데, 우리는 수영구에 살고 있다 해서 이곳에서 만난 거였다. 가이드는 계속해서 외국인이었으면 이걸 했을 텐데,라는 말을 반복했다. 부산에서 살아보고 싶어 왔다고 하니 의아한 듯 우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부산 좋잖아요. 따뜻하고.”
“부산 바람 많이 불어서 추워요.”
가이드는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내국인이 굳이 이런 걸 신청했냐는 뉘앙스를 풍겨서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동네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조그마한 마을 박물관이었다. 그곳에 있는 문화해설사 님이 벽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수영구의 역사를 설명했다.
수영구는 조선시대 좌수영이 있던 곳이었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수영사적공원이다. 물론 이곳도 대부분의 흔적은 사라졌고, 수영초등학교의 교문으로 사용되던 남문만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다. 아마 교문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면 이 마저도 남아있지 않았을 거라 했다. 그래도 지역의 놀이 문화만은 그대로 계승되어 왔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수영야류(정월 대보름날 즐기던 탈놀이)와 좌수영어방놀이가 그것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센텀시티와 마린시티 위치에 예전에는 수영공항과 수영해수욕장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매일 산책하는 수영 강변길 아파트 역시 대부분 매립된 땅 위에 세워진 거였다. 그러니까 이 동네는 부산의 신도시인 셈인 것이다. 어떤지 도로가 넓고 반듯하다 했다. 이 동네의 옛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저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