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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Mar 14. 2024

다양한 맛이 조화로운 부산의 음식

 그와 나는 회사를 그만둔 이후 주로 집밥을 먹는다. 외식은 많아야 주 1회를 넘지 않는다. 맞벌이를 하면서 외식은 지겹도록 했고, 음식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생각에서다. 집에서 만들어 먹기 어려운 탕수육이나 초밥 같은 것이 먹고 싶을 때만 외식을 한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함이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우리는 한 달에 쓸 생활비를 아주 신중하게 정했다. 그리고 그 생활비가 준비되었을 때 결심을 단행했다. 그리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두 식구가 살아가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둘 다 물욕이 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전쟁과 팬데믹의 시대를 지나며 온 세상의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지금 우리가 쓰는 돈은 정했던 생활비의 경계선에서 찰랑찰랑 흘러넘치고 있다. 자연스레 외식 횟수가 점점 줄었다.


 내가 집에서 먹기 어려운 음식 위주로 외식할 곳을 찾는다면, 그는 집에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을 파는 백반집을 좋아한다. 저렴한 가격에 제육볶음이나 고등어구이를 파는 곳을 발견하면, 메모해 두었다가 혼자 있을 때 그곳을 찾아간다. (요리는 주로 그가 하기 때문에) 내가 없는 날은 그가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날인 것이다. 그걸 그렇게 열렬히 찾는 걸 보면, 그는 혼자서 외식할 날을 엄청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부산의 우리 집은 관광지 중심에 위치하다 보니 주변이 식당과 술집으로 가득하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유명 맛집들도 많다. 우리는 동네의 가게들을 유심히 살핀다. 언젠가 와서 먹을만한 곳인지 아닌지를. 소중한 외식의 기회를 대충 때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맛있는 것만 먹어야 한다! 괜찮은 식당을 발견하면 까먹지 않도록 사진도 찍고, 엑셀에 따로 정리도 해둔다. 눈에 띄지 않으면 잊을까, 메모장에 적어서 화이트보드에 붙여두기까지 했다.


 얼마 전, 미쉐린 가이드 부산이 발표되었다. 해운대나 수영구를 돌아다니다 가본 식당들도 있어 왠지 뿌듯했다. 안 가본 식당들은 우리의 외식 후보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외식 후보 식당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나들이 떠난다. 사직에서 KCC 농구를 보고 금강만두 육개장을 먹는다거나, 동래읍성을 걷고 나서, 동래파전을 먹는 식이다.

 

다음에 가야지 하고 찜한 동네 식당들.


 외식에 진심이다 보니 어디를 가도 주변의 식당들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보다 부산에 유독 많이 보이는 식당의 유형을 알게 되었다. 돼지국밥, 밀면, 낙곱새는 부산 대표 음식으로 워낙 유명한 만큼 그 수도 많다. 그리고 부산에 살면서 알게 된 건 복국, 대구탕, 대구뽈찜 그리고 양곱창집이 많다는 거다.


 복국은 부산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간 음식이라고 한다. 복어가 이 지역에서 많이 어획되는 것도 있지만 일본 요리법의 영향도 받았다 한다. 부산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아무래도 타 지역보다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음식들이 많은 것 같다.


 부산 가덕도 주변에서 잡히는 대구는 조선시대부터 진상품일 만큼 그 맛으로 유명하다. 부산의 대구탕은 맑은 탕인데, 생선비린내가 나지 않고 깔끔한 국물과 푸짐한 고기를 자랑한다. 고기가 얼마나 많은가 하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불러서 다 먹지 못할 정도의 양이다. 부산하면 주로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떠오르는데, 하얗고 깔끔한 국물 요리도 정말 맛있다. 대구탕도 그렇고 복국도 그렇고. 밀양식이 아닌 부산식 돼지국밥인 신창 국밥 역시 맑고 깔끔한 국물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깊은 맛이 느껴진다.


 부산하면 바다니까 대구나 복국은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양곱창집은 왜 많을까. 일제강점기에 이출우검역소가 있어 소와 관련된 산업이 발달해서일까. 음식의 역사는 정확히 알기 어렵기는 하나 양곱창 요리를 식당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부산 자갈치 시장의 백화 양곱창이라는 이야기를 읽었다.

 

 부산의 양곱창은 그 맛도 훌륭하다. 맛집을 찾지 않고, 보이는 동네 식당 아무 곳에나 들어가 먹어도, 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백화 양곱창이 있는 자갈치 양곱창 골목은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그 맛이 점점 궁금해진다. 아직은 외식 후보 리스트 속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고기만 먹어도 배부른 대구탕 그리고 곱창전골 사진


 부산의 음식은 다양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이 만큼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의 향토 음식이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6.25 피난민들과 개항 이후 빠른 속도로 유입된 이국의 문화가 부산 만의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냈다. 소고기국밥 대신 돼지국밥이, 냉면을 대신한 밀면이. 일본의 조리법을 한국화 한 오뎅과 완당 같은 음식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전쟁 당시 시장상인들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비빔당면과 물떡, 씨앗호떡과 같은 분식도 부산만의 별미다. 원래부터 부산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식자재와 항구도시 특유의 유동성 그리고 부산이 경험한 다이내믹한 역사가 다른 어떤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고유의 음식 문화를 만들어 냈다.


 다양한 맛의 조화도 그렇지만, 나에게 부산의 음식이 매력적인 이유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가성비다. 가격은 싼데 먹을만해 정도가 아니라 저렴한데 맛까지 있는 가성비다. 유명한 식당 몇 군데를 제외하면 수도권 보다 적어도 천 원, 이천 원이라도 저렴하다. 만약 가격이 비슷하다면 양과 질이 훨씬 푸짐하고 알차다. 부산의 음식은 돈을 내면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외식 후보 리스트는 점점 두둑해지는데, 1주일 한번 외식으로 다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식을 좀 더 늘려야 하나….


* 부산 향토 음식 정보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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