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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Mar 21. 2024

손님을 맞이하는 일

 부산이나 제주도 같은 관광 도시에 살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다. 제주에서 회사에 다니던 시절. 여름휴가철을 맞이하면 나뿐 아니라 주변 동료들 모두가 손님맞이로 분주했다. 이번주말에 친구들이 놀러 오는데, 괜찮은 횟집 좀 추천해 주세요. 다음 주에 아직 걷지 못하는 조카가 오는데 그 숲길에 유모차가 갈 수 있던가요, 같은 대화를 우리는 나누곤 했었다.


 부산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자주 입는 옷을 걸어두는 행거와 디지털피아노가 있는 작은방을 청소하고, 짐은 안방으로 옮긴다. 접이식 매트리스는 펼쳐서 커버를 씌우고 이제 막 빨아서 좋은 향이 나는 이불과 베개를 꺼낸다. 두 식구에 최적화된 거실의 가구 배치도 손님 수에 맞추어 옮겨둔다. 집 정리를 마무리하고 나면 우리는 마트로 향한다. 평소에는 비싸서 손이 가지 않는 과일을 사고,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술과 안주를 집어든다. 그러나 이런 준비 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관광 코스를 준비하는 일. 맛집을 찾아두는 일이다.


 여행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관광에 그다지 열심이지 않다. 우리는 거의 수영구와 해운대 주변만 어슬렁거린다. 맛집도 그렇다. 우리는 외식을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가본 식당이 많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 부산 어디가 좋아? 맛집 좀 알려줘,라고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다. 부산시민만 알고 있는 숨겨진 맛집 같은 건 모른다. 우리가 아는 건 동네 돼지국밥이나 베이글 맛집 정도다.  


 그래도 우리가 부산에 머물 동안 언젠가 가볼 장소이고, 먹을 음식이다. 우리는 손님을 위해 기꺼이 맛집을 찾고, 가볼 만한 장소를 정리해 둔다. 먼저 가보고 나서 능숙하게 안내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도 초행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산에서 일 년쯤 지내다 보면 누가 언제 와도 막힘없이 숨겨진 명소를 알려줄 수 있게 될까.


금정산 금샘과 고당봉에서 바라본 풍경


 엄마를 제외한 양가의 가족들은 한 번씩 부산에 내려왔었다. 부산을 돌아다니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서, 아니면 그저 바다를 보며 쉬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정보로도 충분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 앉아 두런두런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데 보냈으니까.


 그가 영어 공부를 위해 홀로 떠나고, 한동안 부산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다. 엄마에게 내려와서 좀 오래 지내다 가라고 말했더니 영 시큰둥했다. 내가 요즘 운전을 하지 않아서일까. 큰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나는 옆 차선의 차가 너무 무서워졌다. 다시 운전을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으나, 이곳은 부산이다. 운전도 무서운데 길이 낯설어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엄마는 부산 온 김에 통영도 가고 싶고, 거제도 가고 싶을 텐데 운전 못하는 딸만 있으니…


 나는 함께 갈 공연을 예매해 놓고 엄마를 꾀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 가능한 관광지들도 이야기했다. 그중에서 엄마가 제일가보고 싶어 한 장소는 금정산이다. 금정산은 높이 801.5m로 부산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부산을 대표하는 진산이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금정산에 가보고 싶었으나 여건이 맞지 않아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다 한다.


 3월 초, 드디어 엄마가 내려왔다. 날이 가장 좋은 때를 골라 금정산에 오르기로 했다. 나는 어디를 들머리로 가야 할지 미리 알아보았다. 그런데 금정산을 오르는 등산코스가 너무 다양한 게 아닌가. 대표하는 코스 하나 정도는 있을 만도 한데, 저마다 이게 최고라 하니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금정산 등산 후기 수십 개를 찾아본 끝에 범어사로 오르는 코스를 정했다.


 지하철을 타고 1호선 범어사 역에 내렸다. 7번 출구로 나와 90번 버스를 타고 범어사 입구까지 가야 했다. 버스는 오르막 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버스로 금정산 높이 절반쯤은 오른 것 같았다. 온 김에 범어사 한 바퀴를 둘러보고 청련암을 지나 고당봉으로 향했다. 조금 이른 새싹이 오르지 않았을까 기대했으나 나무 가지는 여전히 앙상했고, 바닥은 얼었던 땅이 녹아 질척거렸다. 그래도 길이 완만하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는 길만 조금 가팔랐을 뿐이다.


 고당봉에서 바라본 풍경은 놀라웠다. 산과 강과 바다가 이렇게 조화로운 풍경이 또 있을까. 낙동강은 굽이쳐 흘러 바다로 향하고, 그 옆으로는 김해평야가 넓게 펼쳐졌다. 부산 시민의 식수를 공급하는 회동 저수지는 하늘색만큼 푸르렀다. 멀리 익숙한 광안대교와 마린시티도 보인다. 보고만 있어도 시력이 좋아질 것만 같은 푸릇푸릇한 풍경이었다.


 완만한 길이어도 산은 산인지라 정상을 올랐다 내려오니 조금 피곤했다. 금정산은 동래와 가까이 있는데. 엄마가 동래 하면 온천이 유명하지, 해서 우리는 허심청에서 등산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가기로 했다. 허심청은 커다란 돔형 천장이 있어 실내가 환해 좋았다. 두 시간 동안 여러 탕을 오가며 온천을 즐겼더니, 피부도 부들부들, 마음도 부들부들 해졌다. 온천을 나와서는 동래파전에다 금정산성 막걸리까지 한잔하니 기쁨으로 더욱 충만해졌다. 금정산 등산에 동래 온천과 파전이라니, 정말이지 완벽한 하루 코스가 아닌가!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만 있을 때는 해보지 않을 경험을 하고,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다.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한 우리 둘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꺼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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