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문
*선의 공간화
이 작은 방은 나만의 왕국이다. 나는 이 안에서 왕도 될 수 있으며 신하도, 아니면 노예가 될 수도 있다. 빙빙 돌아 한 구석에 있는 소파에 안착한다. 턱을 괴고 다시 떠올린다.
이상한 습관이 생긴 것은 바야흐로 사춘기 때다. 모두가 격동의 시기를 겪는다.
나는 도리어 침잠의 시기를 지났다. 내 몸뚱이는 침대 속으로 꺼져 그 안에 있을 무한한 구덩이로 떨어지곤 했다. 그 속은 너무도 깊고 어두웠다. 그 감각이 오히려 따스했다고 말하면 이상한 일일까? 종종 나는 방의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유영했다. 어둠은 내게 새로운 확장이었다. 마치 영화에 나오던 마법 분필처럼 틀을 그리고 가운데 서면 연극의 막이 올랐다.
스위치를 내린다. 방 한 편에 자리한 소파가 충분히 들어오도록 바닥에 붙인 흰 테이프 안으로 걸어간다. 끄트머리는 험할지라도 중간 부분만은 튼튼하게 지지대가 된다. 이상향이다. 꿈속에 나타나는 것들에 내 상상을 곁들여 그들을 불러들인다. 오라, 달콤한 세상이여.
“안녕.”
이번에 나는 작은 초원 한 덩이를 만든다. 옆으로 지나가는 양 무리가 굽을 박찰 때마다 잔디가 일어난다. 그들은 머물지 않는다. 그저 관찰하며 지나갈 뿐이다. 작은 양 한 마리를 안는다. 다행히 그것의 어미는 이미 초원 밖으로 떠난 뒤다. 억세고 곱실거리는 털에서 풀 냄새가 풍긴다. 짓이긴 잡초의 새파란 향이 코로 스민다.
그것은 이상하리만치 사람을 닮았다. 눈빛은 짐승의 것이라기엔 애환에 젖어 있다. 나는 왜인지 벅차오르는 마음에 그것의 몸통에 코를 박는다. 동물이라면 으레 날 법한 오물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순간, 바닥이 꺼져 나는 구덩이에 빠진다. 양을 놓친 나는 괴악한 소리를 낸다. 안돼, 나와 함께 있어줘….
눈을 뜬 나는 땀에 젖은 채 바닥에 널브러진 채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내 호흡이 어설퍼진다. 폐가 제멋대로 일하는 것이다.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나 발가락으로 장판 위를 디뎌 본다. 탁자가 있을 법한 곳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는다. 눈이 부실 정도의 빛무리가 폭력적으로 나를 때린다.
스위치를 올리기 전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핸드폰 불빛으로 이곳저곳을 비추면 그저 방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내 방. 쿵쿵거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면 어릴 때 사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들고 다니던 야광 별 스티커가 눈에 띈다. 누군가 내려온다. 얇은 콘크리트와 철근 덩어리 너머로 소리는 쉽게 퍼진다.
나는 무릎을 앞으로 모으고 앉아 팔을 두른다. 침입자가 온다.
몇 분이 지나자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다. 귀가 따가울 정도다. 인기척을 느낀 현관 등이 제멋대로 켜진다.
”학생! 또 시끄럽게 굴 거야? 안에 있지?”
“…….”
발가락을 끝에서부터 하나씩 꼼지락대면 갈 거야. 확신하며 눈을 감는다. 나를 감싼 어둠이 한 겹 덧씌워진다. 새끼발가락, 네 번째, 세 번째, 중간 두 개…. 이제 갔나? 나는 타조 새끼처럼 고개를 든다. 눈알을 굴려 현관문을 본다. 단단히 잠긴 문틈 새로 복도의 빛이 보이는 착각이 든다. 고개를 흔든다.
“-경비한테 얘기를 해야지 원….”
약을 먹자. 안전한 곳으로 달리자. 땀으로 축축해진 셔츠를 벗어 대충 바닥에 던진다. 바지마저 벗으면 온전한 나신이 된다. 그대로 침대로 기어간다. 내 두 번째 울타리. 촌스러운 줄무늬가 눈에 아른거린다. 이불을 사리처럼 휘감는다. 설산 꼭대기의 조난자처럼 덜덜 떨리는 몸에 떠올린다. 약.
책상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다. 일단 잠으로 도피한다. 과연 꿈이 내 편을 들어줄까? 내가 그 정도로 사랑받는 인간인가? 뾰족하게 찔러오는 심장이 아프지만 눈을 다시 꾹 감는다.
‘수인아.’
그리운 목소리다.
‘넌 왜 그러는 거니?’
그립지 않은 말이다. 그 답을 알았다면 내게 흰 테이프 왕국은 필요 없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