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9시 뉴스는 세상을 읽는 통로였다. 오늘날엔 9시에 텔레비전 앞에 앉지 않아도 뉴스들은 넘쳐난다. 세상은 소리들은 불안과 불만의 아우성이다.
그런 뉴스에 멀미가 난 어느 날 문득, 세상에 웃음이 사라져 버리면 어쩌나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웃음이 난전에서나 겨우 팔리는 퇴색된 단어가 되면 어쩌나.
감정도 없고 온기도 없는 회색도시, 그래도 구경꾼 너머너머의 저 사내에게 웃음이 팔리길. 그래서 그 회색도시에 다시 화색이 돌길.
희망한다.
사과나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최대치의 열매를
마지막 죽는 그 해 가지마다 매달아
가지가 죽죽 찢어진대
전부 주고 떠난대
유튜브 숏츠 영상에 붙들린 그날부터
나무의 안간힘이 불쑥불쑥 찾아와서
잇속을 따진 사랑에
혀를 끌끌 차더라
주고받는 셈법에서 손해 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그렇게 그렇게 썼는데
그 나무 환생하려나 봐
얌치없는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떠나는 사과나무의 마지막 생애가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살면서 절대 놓지 말아야 할 단어가 사랑인 줄 알면서, 그 아름다운 단어를 두고도 잇속을 따진다. 저 나무처럼 사랑하고 싶다. 주고도 셈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아도 초연한. 내 안에서 이미 가득 차 충만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