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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법모자 김시인 Mar 03. 2024

내가 만난 책 이야기 37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프란츠 카프카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카프카가 시를 썼다고? 하는 호기심에서 주문한 책이다. 그의 소설적 문체로 미루어 '이상의 시와 닮았을지 몰라'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카프카의 시는 이상의 시처럼 난해하거나, 그의 소설처럼 리좀적이지 않다. 그의 시는 간결하고 깔끔하다. 언어를 아끼고 감정을 절제했다. 물론 표지의 화사함과 내용적인 괴리감은 있지만.


5부로 구성된 시편은 각 부를 구성하는 시편에 번호를 매겨놓아 연작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연작시는 아니다. 그리고 카프카가 정식으로 발간한 시집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 해까지 꾸준히 시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남긴 드로잉 작품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카프카 시선집은 카프카의 일기, 편지, 살아 있을 때 출판한 작품과 유고 등에서 카프카의 시(적인 것) 116편을 따로 떼어서 한국어로 번역한 최초의 시도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시선집은 1부는 고독, 2부는 불안, 불행, 슬픔, 고통, 공포, 3부는 덧없음, 4부는 저항 그리고 5부는 자유와 행복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묶었다. (작품 후기 참조) 키워드들이 카프카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러니 이 책은 카프카가 남긴 모든 글에서 시적인 것을 샅샅이 찾아내 엮은 것이다. '사후 100주년 기념 시선집'이라는 띠지가 붙어있다. 그만큼 카프카의 글은 여전히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적 단상이나 드로잉조차도 그냥 묻히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독자들이 있는 것이다.




1부-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1

오고

이별이 있다

그것도 자주----재회는 없다



2부-지옥의 가면을 쓰고 있다


18

공허, 공허, 공허.

무력함,

자기 파괴,

땅을 뚫고 나온

한 줄기 지옥의 불꽃의 끝.


19

청춘의 무의미.

청춘에 대한 두려움,

무의미에 대한,

비인간작인 삶의 무의미한 상승에 대한

두려움.


20

나는 구석구석 찾지만

자신을 찾지 못한다


33

절 도와주세요!

스스로 당신을 도우세요


당신은 저를 버릴 건가요

네.


제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43

목표는 있으나,

길은 없다.

우리가 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망설임이다.


51

사랑은,

당신이 내게

칼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 칼로

내 마음을 들쑤신다



4부-이미 가장 밑바닥에 와 있다


67

항상 죽고 싶은

욕망뿐이지만

그래도 견뎌내는 것,

그것이 유일하게 사랑이다


70

모든 것이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79

옛날이

나의 동경이었다,

현재가

나의 동경이었다,

미래가

나의 동경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함께

나는 죽는다

길가 작은 초소에서,

옛날부터 곧추선

괸 속에서,

국가 소유의

토지에서.

내 인생을

나는 보냈다,

삶을 파괴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으로.


80

내 인생을

나는 보냈다,

삶을 끝내고 싶은

욕구에

저항하는 것으로.



5부-춤을 추며 뛰어오르라


96

믿음은

단두대의 칼처럼,

그렇게 무겁고,

그렇게 가볍다.


103

네가 서 있는

땅은

두 발이 서 있는

땅의

면적만큼일 수밖에 없다는

행복을 이해하라.


116

"주인 나리, 어디로 가시나요?"


"모른다" 나는 말했다.

"단지 여기에서 떠나는 거야, 단지 여기에서 떠나는 거야.

끊임없이 여기에서 떠나는 거야,

그래야 내 목표에 도착할 수 있어."


"그러시다면 나리께서는 목표를 아신단 말씀인가요?" 그가 물었다


"그렇다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여기-에서-떠나는 것', 그것이 내 목표야."



소설에서 그는 수많은 탈출구를 만들었지만 결국 그곳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지쳐서 죽는다. '여기-에서-떠나는 것'이 목표였던 카프카,   '삶을 끝내고 싶은 욕구에 저항하는 것으로 인생을 보낸 카프카, 누구보다 고독했던 그,  사후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고, 그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프란츠 카프카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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