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내, 기다림의 미학

상처도 시간이 지나야 치유되는데..

수년간 남의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나도 이제 내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투자를 위해 집을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서른 살의 젊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써 조금은 야심 찬 계획이었지만 부지런히 월급을 모으고 집을 보러 다닌 결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에 작은 스튜디오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이 집을 고른 이유 (좋은 위치, 일조량, 천고 등등) 중 가장 중요한 건  레노베이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큰 잠재력이었다.  지금은 스튜디오 아파트지만  원베드룸 아파트로 레노베이션을 하면 더 높은 가격대에 매물로 차액 수입을 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입주 첫해 레노베이션을 감행하게 되었다. 



 처음 계획한 공사 기간은 6주였으나 부모님의 뉴욕 방문을 앞두고 나는 시공팀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인부를 더 고용하고 특 배송되는 마감재들로 공사 스케줄을 밟혀 나갔다.  이럭저럭 정리되나 가는 공사의 마지막 작업은 바닥.  당시 나는 엄마와 북유럽 디자인 여행에서 본 탈색된 오크나무에 심취해 있었고 그 마닥 이여만 한다는 고집을 부렸다. 우리 집의 기존 바닥은 오크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뉴욕 바닥으로 노리끼리한 스테인에 반짝이는 우레탄 코팅까지 돼있어 눈에 거슬렸다. 색에 민감한 나로서는 이 누랭이 위에는 어떤 가구를 올려놓아도 어떤 벽이 올라가도 촌스러워 보일 것 같았기에 과감히 탈색을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며칠 후 도착하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그때, 시공 팀장은 나를 불러 바닥작업의 고충을 토로했다. 원래 바닥의 코팅을 벗겨내고 표백을 고 나면 나무가 표백재를 흡수하고 잘 말리는데 최소한 하루 정도 놔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사가 하루 더 지연되니 부모 닙을 호텔에 며칠 모시라는 거다.  하지만 난 이틀 뒤에 도착하는 부모님을 감탄시켜야 한다는 집착에 기다리지 말고 바로 시작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계획대로 이틀 뒤 부모님이 도착하였고 개조된 집을 보고 엄마 아빠는 매우 흡족해 하셨고 그런 부모님을 보며 나 역기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유정아, 바닥에서 때가 밀리는데?." 바퀴가 달린 짐가방을 끌고 들어오는 순간 지나온 접촉면을 따라 바닥이 뱀 허물 벗듯 벗겨지는 것이다.  표백제가 마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칠을 한 대가였다. 위에 올린 크림색 코팅은 일광욕 후 벗겨 나가는 피부 껍질처럼 조금만 손을 대고 스륵 벗겨 저 나갔다. 손바닥 만했던 마루 껍질의 상처 아닌 상처는 하루에 5 제곱미터씩 커져 갔고 모든 마루를 다시 손 봐야 하는 게 분명해져 갔다.  집안 가구들을 모조리 들어내고 하는 큰 작업이었기에 부모님이 계시는 동안 공사는 무리였다. 그래서 나의 부모님은 오래간만에 오신 뉴욕 채류 기간 동안 바닥의 널린 피부 조직들을 쓸고 치우기를 반복해가며 고생하셔야만 했다.



지금은 가족들 사이에서 재밌는 우스갯거리지만 난 이날 큰 교훈을 얻었다.  20대의 오합지졸 디자이너로써 필요한 절차를 무시하고 건너뛰면 벌어지는 시공 참사에 대한 가르침도 있었지만 시간이 필요하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인생 교훈이었다.  탈색이란 프로세스는 나무에게 엄청난 대미지를 준다. 자연이 부여해준 고유의 색을 화학적으로 표백해버리는 게 나무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 아픔이 아물기를 기다리지 않은 결과 후폭풍이 불어 닥친 것이고. 마치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대하듯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 충분히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급하게 억지 하루의 시간을 벌려다가 한 달을 고생한 나는 오래된 마룻바닥의 허물 벗기에서 필요한 시간 총량의 법칙을 무시하면 탈이 아는 법이라는 인생 교훈을 얻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