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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벽이 아직도 어려운 이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디자이너 엄마와 디자이너 딸

우리 엄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다. 한국에 인테리어라는 콘셉트 자체가 생소할 때 엄마는 인테리어 회사를 차리고 어린 아기였던 나를 데리고 일을 하셨다. 수입 커튼, 명품 가구들을 취급하며 시작했던 쇼룸은 40년 사이 큰 기업의 인테리어를 도맡아 하는 우리나라 1세대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로 성장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엄마의 첫 가게는 빨간색 어닝과 빨간색 파티션을 붙인 쇼윈도이다.  빨간 명함과 포장용품 들에서 볼 수 있듯 빨간색은 엄마 회사의 브랜드 컬러였다.  지금도 엄마 사옥에는 지하까지 내려가는 5미터 높이의 빨간 벽이 포인트로 자리 잡고 있다.



40년이 넘도록 빨간색에만 충성한 엄마와는 다르게 나는 좋아하는 색이 여러 번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보라 공주로 불릴 만큼 보라에 환장하는 아이였고 대학생 때는 민트색 벽지에 민트 가구를 수집하던 민트 마니아였고 회사를 다닐면서는 무조건 튀어야 한다는 강박에 핫핑크를 고집했다. 서른 중반이 넘은 지금은 잔잔한 회색톤에 눈길이 가는데  삶의 시기에 따라 선호한 색이 이렇게나 많이 바뀌는 어떻게 보면 지조가 없이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게 나인걸 어쩌겠는가. 



대학생 때 엄마가 용돈벌이로 그래픽 작업을 하나 시킨 일이 있다.  엄마의 디자인 철학과 색이 한껏 들어간 제품 라인 개발에 일이었는데  난 엄마의 요구들은 무시한 채 내 중심으로 내 스타일로 디자인을 풀어갔다. 당연히 엄마는 나의 모든 제안들을 거절했다.  유정인 아직 디자이너의 자세가 안됬다며 철저히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그들의 욕구를 들어주는 게 나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타일렀다. 

이렇게 난 학교 밖, 엄마에게서 디자이너의 사명감을 배운 것 같다.  직업적인 면에서의 멘토링, 디자이너를 엄마로 둔 장점으로도 볼 수 있겠다. 같은 직종에 몸담고 있는 선배님으로서 나는 엄마를 물론 많이 존경한다. 하지만 이때부터인지 벌써 나는 왠지 모르게 엄마와는 각자의 노선을 가고 싶은 마음이 있던 것 같다.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라는 자아 정체성을 찾고 지키고 싶다는 욕구 또한 스멀스멀 자리 잡은 것이다.



얼마 전 포트폴리오를 뒤적이다가 내 프로젝트에는 유난히도 빨간색이 드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게 빨간색 기피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하는 직원 또한 있었다. 

아직도 빨강은 내게 너무 강렬하다.  왜일까? 엄마와 딸처럼 서로의 견해가 맞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일까? 

부부의 세계보다 어려운 게 모녀의 세계란다.  그 애착과 분리의 과정, 빨강을 고집하는 엄마와 보라를 쓰자고 생떼를 부리는 철없는 딸의 관계.  그냥 나는 나, 엄마는 엄마라고 생각하면 쉬울 문제가 그때는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자립심을 길러준 엄마에게 감사하다. 그대로를 존중해주고 내게 독립성과 정체성을 길러준 엄마, 그래도 빨강은 아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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