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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몰리 Oct 21. 2022

마음도 훈련하나요?

Hey, Judo-Girl > 승부의 세계란..!

유도 대회 당일. 사실 대회 전날까지도 체중이 간당간당했다. 체중 때문에 유도 대회를 못 나가는 그런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그랬으면 진작에나 체중 관리 좀 하지..라고 나 스스로도 계속해서 생각했으니 더 이상 비난 말자^^), 그래서 유도 대회 전날 열심히 운동하고 물도 안 마시고 잠을 잤고, 결국 대회날에야 체급을 맞춰 무사히 계체를 통과했다(체급 맞추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다루겠다).  


무사히 계체를 통과해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물과 밥을 먹었다. 전날 점심을 먹고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충분히 배가 고팠고 무엇보다 힘을 내기 위해 잘 먹는 것이 매우 필요했지만, 대회 당일 너무 긴장한 탓에 물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회에 일찍 도착해서 밥도 먹고 여유 있게 몸을 풀려했지만, 여유는 개뿔. 긴장만 가득한 채 아무것도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대회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였고, 나도 슬슬 준비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애가 그렇게 거센(?) 유도를 좋아한다고, 다쳐서 골병들면 어떻게 하냐며 늘 내 유도 생활에 걱정이 많은 엄마도 나와 동생의 유도대회를 응원하기 위해 언니와 함께 왔다. 내 첫 경기는 대회를 시작하고 세 번째 경기였기 때문에 몸을 빠르게 풀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대회를 구경 온 엄마와 언니를 보자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주로 온갖 주책을 도맡는 성격이다).


내가 사실 우리 집 남매 중 유일하게 키가 작다. 언니도 165를 넘고, 남동생도 180을 넘지만 나는 사실 160이 안된다. 그래서 늘 엄마는 날 걱정하는데, 그런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보는 엄마를 보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나를 보며, 오히려 언니와 엄마는 울컥했다고 했다(아마 주책을 도맡는 성격은 유전자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나의 첫 유도 경기 상대는 나보다 유도 경력이 많아 보이진 않았지만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 사람은 참 여유가 넘쳤다. 너무 긴장돼서 치아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와 달리, 상대는 우리 관장님과 농담 따먹기까지 하면서(심지어 우리 관장님이랑 초면이었는데도) 여유가 넘쳤고, 오히려 그 모습에 나는 조금 더 위축됐다. 너무나 여유로워 보이는 그녀에게 "긴장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고 그녀는 "그냥 즐기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위축되었고, 쭈다리답게 바들바들 격렬하게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긴장했어도 할 것은 해야지.
내 목표는? '첫 판에서 참패당하지 않기'

극강의 긴장상태였던 쭈다리 유도걸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고, 목표를 잘 이루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간 멋진 유도걸은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써본 '밭다리 걸기' 기술을 걸어 상대를 넘어뜨리고 마침내 "승리"까지 해냈다.


대회가 끝나고 목에 걸린 메달을 보면서 내 경기들을 다시 떠올려봤다. 경기를 떠올리면서 들었던 생각은 난 승리했을 때조차 제대로 웃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승부를 즐기기는커녕, 승리조차 즐기지 못했던 나는 대회가 다 끝나고 모든 긴장이 풀어진 뒤에야 즐기지 못한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승리에 몰두해 있었으면서 정작 승리의 기쁨은 누릴 줄 몰랐다.


나의 첫 상대였던 그녀처럼 "그냥 즐기는 거죠."의 마음이 나는 왜 안됐을까? 근데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늘 그랬다. 즐길 줄을 모르고 늘 전전긍긍의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이런 모습도 결국 쭈다리인 내 모습인데, 내 삶에선 '안되면 어쩔 수 없지'와 같은 당찬 면모를 찾기 어렵다. 늘 '안되면 어떻게 하지?'를 생각하며 미리 걱정했다. 마치 중요한 모든 일에 예방 주사를 맞는 사람처럼, 미리 걱정을 하면 덜 힘들게 지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도 대회 이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메달의 영광도 사라지고, 메달조차 어디에 뒀는지 모르는 이때. 나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여유 있게 웃을 수 있는, 졌어도 "아 그 경기 아쉽지만 재밌었는데. 또 경기하고 싶다."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 지금 내게 "너 대회 또 나갈래?"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승부를 즐기지 못하는 나에게 연속적으로 승부를 치러야 하는 대회는 너무 피곤한 일이니까(이래서 승부의 세계는 어렵고 냉정한 거다. 잉?). 이번에 대회를 하면서 깨달았던 것은. 난 지는 것을 포함한, 승부 자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붙어보자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여유. 지더라도 승자에게 덕분에 즐겁게 경기했다고 웃어주는 여유.


유도걸이 유도를 통해 훈련해야 하는 건, 어쩌면 밭다리 걸기, 한 팔 업어치기와 같은 기술보다 이기고 지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어떤 쪽이든 기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마음의 훈련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마음을 훈련하는 방법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냥 유도하면서 계속 메치기를 하다보면 피부에도 끊임없이 자극을 주어 뼈와 피부가 뭔가 좀 더 탄탄하고 단단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계속해서 자유 대련하면서 승부의 맛을 본다면, 그것이 오늘의 내 마음을 더 강하게 해주리라 기대해본다.



마음은 아직도 흰띠라구..


그러니 오늘도, 헤이 유도걸!

"Hey, Jud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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