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택주 Nov 02. 2022

산울어린이학교 꼬마평화도서관(48)

사랑하는 조국은 둘이었네… 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

10월 27일 마흔여덟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이 군포에 있는 '산울어린이학교'에 둥지 틀었다.

마흔여덟 번째 꼬마평화도서관 개관잔치 / 빛그림 늘보

문을 여는 잔칫날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살림지이 황온숙 선생과 팟빵 ‘경영공작소’를 함께 녹음하던 재담꾼 김주원 선생과 함께 갔다.


산울어린이학교에서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싶다고 뜻을 밝힌 건 2020년 초이다. 코로나19로 이태나 지나 문을 연 이 도서관은 마흔일곱 해를 미국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은퇴한 변혜자 선생이 내놓은 돈으로 책을 마련했다. 그러니 '혜자꼬마평화도서관'이라고 덧이름을 붙일 수 있다.


학교 이름 '산울'은 살아가는 울타리라는 말로 살아있는 것들이 서로 울타리가 되어 두루 살린다는 뜻이 담겼을 테다. 이름에는 ‘나’ 또는 ‘우리’가 무엇으로 불리기를 바라는 뜻과 함께 마침내 이르려고 하는 뜻을 고루 담는다. 그런데 ‘산울’ 살려 사는 살림살이 배움터라니 아름답다.  


뭇산이(살아있는 온갖 이)가 서로 울타리가 되어 우리를 이뤄 두루 살려 사는 살림살이를 배우는 아이들은 토종 씨앗으로 텃밭 가꾸기는 말할 것도 없이 생태를 아우르는 벼농사도 어울려 짓는단다. 모든 벼농사 흐름 그러니까 볍씨 싹틔우기부터, 모심기, 피사리, 벼 베기, 벼 털기, 쌀을 깎고 이어 지을 씨앗 남기기까지 몸에 익히다니 가히 어울려 살아가며 한 울을 이루는 공부다. 살림살이를 익히는 이 배움터에 들어서는 꼬마평화도서관이라니 느껍다.

개관식 다음날 벼 베는 아이들 / 빛그림 은빛이모

늦은 일곱 시 이십 분, 나는 나라 곳곳에 꼬마평화도서관을 열러 다니는 까닭을 알리면서 윤구병 선생이 늘 말씀하는 좋고 나쁜 것을 가르는 잣대 얘기를 했다.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으면 좋고, 있을 것이 없거나 없을 것이 있으면 나쁘다는 얘기를 나누면서 어떤 것이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이 없을 것이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있을 것으로 평화를 없을 것으로는 싸움과 전쟁을 꼽았다. 그렇다. 나쁜 짓은 있어도 나쁜 사람이나 나쁜 나라는 없다. 우리와 맞서는 사람이나 나라를 나쁜 사람 또는 나쁜 나라라고 을러대기만 한다면 평화는 오지 않는다.     


잔치 문은 열한 아이들이 나와 악기 연주를 하고 노래하며 열었다. 아이들은 재청을 받은 두 곡까지 해서 다섯 곡이나 부를 만큼 흥겨워했다. 이 가운데 나를 마구 뒤흔든 노래는 일본에 사는 동포가 지은 노래 '하나'였다.     

'하나'를 연주하고 부르는 아이들 / 빛그림 늘보

내가 태어난 때부터 사랑하는 조국은 둘이었네

슬픈 역사가 이 땅을 갈라도 마음은 서로 찾았네 불렀네

볼을 비빌까 껴안을까 꿈결에 설레만가는 우리

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 가슴에 맺힌 이 아픔 다 녹이자

함께 부르자 아 함께 부르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들릴까 

이 노래를 이 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     


어린 꿈속에 그려본 사랑하는 조국은 하나였네

오랜 세월에 목이 다 말라도 마음은 서로 눈물로 적셨네

볼을 비빌까 껴안을까 반가와 이야기 나눈 우리

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 이 땅에 스민 이 눈물 다 말리자

함께 춤추자 아 함께 춤추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보일까

이 노래를 이 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    

 

하나로 되자 아 하나 되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전할까

이 노래를 이 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


"내가 태어난 때부터 사랑하는 조국은 둘이었네."를 들으며 뭉클하던 마음이 "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에 이르면서 울컥했다.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들고 있는 말머리 '1+1=하나'가 소복했기 때문이다.   

  

꼬마평화도서관 생각을 담은 '1+1=하나'가 새긴 윗도리를 입고 있는 윤구병 선생 / 빛그림 늘보

아이들이 다시 '하나'를 이룰 날을 그리다니 놀랍고 반가운 한편, 나라가 두 동강이 난지 70여 년이 넘도록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애만 끓이고 있는 우리가 이 아이들 앞에 멀쩡한 낯을 들고 서 있기 부끄러웠다.


잔치는 권정민이 짓고 보림이 펴낸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산울어린이학교 교사인 송승민 관장이 연주하고, 이어서 라이마가 짓고 천개의바람이 펴낸 [불 뿜는 용]을 4학년 이주안과 2학년 안송희가 연주하면서 꼭대기로 치닫는다. 나서기를 꺼리며 가까스로 작은 목소리를 내던 아이들이 한 쪽 두 쪽 넘어갈수록 제 목소리를 내더니 급기야 대사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아주 실감나게 연주를 하면서 듣는 사람 가슴을 울린다. 연주를 마치니 잔치를 연지 한 시간 남짓하다.     

[불 뿜는 용]을 연주하는 아이들 / 오른쪽 첫 번째가 주안, 분홍빛 옷을 입은 아이가 송희다. / 빛그림 늘보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난개발로 삶터를 잃은 멧돼지들이 도시로 들어와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우화를 그린 이 책에는 생각거리가 많다. 어렵사리 살 곳을 찾은 멧돼지 식구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같은 처지에 놓인 동무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다. 연주를 마친 이들은 ‘왜 그랬을까?’하고 묻다가 ‘같이 살려고’라는 쪽으로 말 줄기를 모았다. 

'다른 눈길로 보고 싶어요.' / 빛그림 늘보

[불 뿜는 용]은 모기에 물려 부아가 치민 용이 불을 뿜어대며 성을 내다가 치솟은 화를 걷잡지 못하고 둘레를 새까맣게 태우는 우화다. '다른 눈길'로 보고 싶다며 나선 분이 있었다. 불이 밥을 비롯한 모든 것을 까맣게 태우는 장면을 뒤집어서 밥을 짓는다거나 좋은 데 쓰도록 그리겠다고 했다. 이 말씀이 오래도록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가 쓴 뜻을 따라 고개를 끄떡이는 것도 좋지만 뒤집어보기가 더 싱그럽기 때문이다. 손발 놀리고 몸을 놀려 하는 살림살이를 으뜸으로 여기는 대안학교 사람들다움에 다달이 마지막 목요일에 열릴 산울평화그림책연주가 기다려진다.


작가의 이전글 첫 번째 목요일 오전 11시에 만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