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는 물건들을 소유하는 것에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들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물건들에 종속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물질만능주의라고 이야기하는 이 사회에서 정말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이 아닌 ‘나다움'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세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소중한 것들로만 채워진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저는 5년차 미니멀리스트로 스스로 소중한 것만 갖는 간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옷에 대한 고민 없이 옷장에서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날씨 좋은 날엔 대청소 대신 도서관을 다니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습니다. 집을 치우고 물건을 정리하는 시간이 아닌, 나를 돌보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으며 살고 있어요.
저 역시 처음부터 이런 미니멀라이프를 살았던 건 아닙니다. 백일 동안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에서는 이민 가방만한 큰 캐리어 한 개와 배낭 하나, 그리고 작은 보조가방 까지 챙겨서 유럽으로 이사하듯 여행을 떠나기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던 때라 책과 지도를 보며 숙소와 목적지를 찾아다녀야 했는데 짐이 워낙 많다 보니 짐을 가지고 이동을 하는 날이면 같이 간 친구와 매일 싸움이 이어질 만큼 예민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어요. 큰 짐을 지고 다니는 저에겐 낮은 계단이 아주 높은 계단 같았고, 그런 계단이 조금만 많아져도 짐을 버리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도 그 캐리어 안의 물건들이 뭐가 그리 소중했는지 오히려 짐이 더 불어난 채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덕분에 마지막까지도 ‘수화물 무게를 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짐과 싸움을 했죠.
길고 긴 여행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다시 그때를 기억해보면 그 캐리어 안에 어떤 물건이 담겨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 저의 외적인 모습을 꾸며주는 물건들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제가 기억하는 건 입었던 옷이 아니라 제가 보았던 풍경, 먹었던 음식들, 걸었던 거리인데 말이죠. 지금 다시 여행을 간다면 정말로 좋아하는 옷 몇 벌과 가벼운 배낭을 선택하고 짐을 싸고 푸는 시간을 아껴 유럽 거리를 더 누비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에 시간을 더 썼을 거 같아요.
미니멀리즘이란 어찌 보면 ‘용기’인 것 같아요. 채우는 건 쉽지만 비우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거든요. 하지만 비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번이라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내려놓는 경험을 하고 홀가분해진 나를 만난다면, 그 일이 얼마나 중독성 있는 행복인지 알게 될 거예요. 행복은 내가 가진 물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 물건을 아끼고 사랑했던 순간과 시간으로부터 옵니다. 백일 간의 유럽 여행에서 남은 것 역시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채웠던 캐리어와 배낭 속 물건들이 아니라, 유럽을 온전히 즐기던 나의 모습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우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꼭 적게 가져야 하는 건 아니에요. 많이 가져도 괜찮아요. 전부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라면 말이죠. 사랑하는 물건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미니멀리즘이 제게 알려준 삶의 방식입니다.
밑미 리추얼메이커 안상희 (@shaney_sanghee)
미술을 전공했고 아이들 미술을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5년 차 미니멀리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