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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Feb 28. 2024

끝나지 않는 목욕 시간

영원하지 않기에 영원하기를 바란다

 도담이 몸을 적시면서 새삼 그의 피부가 낯설게 느껴졌다. 탱탱하고 보들보들한 7년 전과 달리 어느샌가 탄력이 없는 것이 조금은 흐늘 거리고 있었다. 어릴 때보다 털도 덜 빠지고 윤기도 줄었다는 건 일찍이 느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이별을 예고하는 거 같아 애써 외면해왔다. 그가 나이 먹어가고 있음을 부정하고 싶었다. 샤워기만 틀어도 화장실 구석으로 숨던 녀석이 정신차리고 보니 물을 가만히 맞고 느긋이 샴푸질을 받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는 분명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내가 그와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듯이 그도 모든 게 당연해져가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모습이 어딘가 나를 슬프게 했다.

 이제 한 번. 내가 그의 몸을 씻겨줄 기회는 딱 한 번 남았다. 3월 25일. 도담이 은퇴일이 정해졌다. '3월 언젠가'가 아닌 그날이 확정되어버렸다. 지금까지 빨래를 한다는둥, 행사라는둥 가장 귀찮아하던 일이 숙제가 아닌 기회가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난 날부터 앞으로 내가 이 친구를 몇 번이나 씻기고 닦여주겠냐며 단 한 번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고 얼마나 고집부렸던가. 그래도 처음으로 이 괴상한 고집이 쓸모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분, 1초라도 더 만져주고 사랑해주고 싶으니까. 정말 몇 번 안되지 않는가. 이제 한 번밖에 남지 않았으니. 남은 건 이제 이별 목욕뿐이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는 내 얼굴 가까이로 콧구멍을 벌름대며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나는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누나가 정말 많이 사랑해. 미안해, 미안해. 항상 고맙고 미안해. 너를 보내야 해서 미안해. 눈이 안 보여서 미안해..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울 강아지 가는 길, 힘든 길 곁에서 못 지켜줘서 미안해."

 도담이가 가만 품에 안긴 채 내 어깨 위에 머리를 얹었다.

 "미안해... 누나 미워 해. 못되먹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나중에 누나 다 잊고 행복하게 살아."

 여전히 그가 가만히 내 품에 안겨있었다. 흠뻑 젖었는데도 그의 체온에 전혀 춥지 않았다. 이렇게 오늘 목욕을 끝내면 이제 정말 한 번이다. 욕실을 나서기 싫다. 영원히 끝나지 않은 목욕이면 좋을 텐데. 계속 오늘이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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