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고즈넉 Oct 17. 2022

월급 쓰레기

나는 쓰레기인가? 나만 쓰레기인가?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인생을 살게 되면서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목구멍'과 '포도청'이 세 글자씩, 서로 글자 수 맞게 대구가 되는 점도 재미있고, 목구'멍'과 포도'청'은 서로 라임(Rhyme)도 잘 맞아 입에 착착 붙는다. 생명의 숭고함을 '목구멍'(목도 아니고 목구멍이라니..)이라는 날 것 그대로 표현하면서 그 숭고함 이면의 비루함을 나타낸 점도 마음에 든다. 또한, 지금의 경찰청을 의미하는 '포도청'으로 먹고사는 일의 절실함과 어려움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세련미가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가지는 매력은 조직과 관련된 그 어떤 의문이나 난관, 흔들림도 이 문구 하나면 다 답이 되는 마법과 같은 활용성에 있다.


[Q1]  요즘 회사는 잘 다니냐?
---> [A1]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닌다.
[Q2] 회사에서 지금 하는 일은 할 만하냐?
---> [A2]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한다.
[Q3] 이번 프로젝트는 좀 무리 아니냐?
---> [A3]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해야지.


[Q4] 강 부장은 도대체 왜 저래?
---> [A4]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저러지.
[Q5] 네가 이걸 왜 해? 가서 못 한다고 해!
---> [A5]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이 해야지.
[Q6] 너는 회사 왜 다니냐?
---> [A6]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닌다.



그렇다. 먹고살기 위해 우리는 회사에 다니고 조직생활을 한다.

첫째, 자신의 조직이 둘째, 그 조직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이 세 가지가 전부 좋다면 세계 평화는 결코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는 이상이고 전쟁은 현실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에서 반증하듯 조직생활은 결코 고상하거나 우아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사는 건 큰 축복이다. 대다수의 조직인들은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하며 먹고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사는 것'이 축복이라면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먹고사는 것'은 재앙인 것일까?

 

여기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보자. 앞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사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했지, 유일한 축복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사는 것' 다음의 축복이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먹고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축복은 받지 못했지만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또 다른 축복을 받은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의 저변에는 성숙된 인간에게만 허락되는 책임감이라는 고결한 심성이 깔려있다. 눈물 나게 회사에 가기 싫은 날에도 꾸역꾸역 출근 준비를 하는 스스로에게, 버거운 업무에 힘들어하면서도 눈 벌게지며 밤새워 해내는 스스로에게 '이 죽일 놈의 책임감'이라는 말이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재앙의 관건은 '하고 싶은'과 '하기 싫은'에 있는 게 아니라 '먹고사는 것'과 '먹고살지 않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과 자신이 마땅히 챙겨야 할 사람들에 대한 사명감을 포기해버릴 때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지는 뉴스 사회면에서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중부양보다 어렵다는게 바로 가족부양이다.




과연 나는 어떤 축복을 받은 사람일까? 최고의 축복인가? 차선의 축복인가?


간혹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고 심지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고 있는 일이 때론 좋기도 하다가 때론 싫기도 하고, 갈팡질팡 자기 마음을 잘 모를 때도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질문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금전적 보상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일을 하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돈 안 받고도 회사에 나오겠니??'이다.

여기서 "네"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일은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맞다. 하지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자신의 직업이나 업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위의 질문에 선뜻 긍정의 답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의 직업이나 업무 자체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직업 또는 업무 + 그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좋아했던 것이다.



월급 : 한 달을 단위로 하여 일에 대한 대가로 고용주가 지급하는 돈


그런 의미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 대다수의 조직인들에게 '월급'이 주는 의미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조직생활은 결코 무보수 자원봉사도 자아실현의 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직을 위해 일을 하고 조직은 우리에게 돈을 준다. 철저히 'Give and Take'이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감정적인 배경을 싹 거둬내고 '주고, 받는다'는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월급을 기다리는 우리는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열심히 일한 날 못지않게 농땡이 치며 보낸 날이 주는 뿌듯함도 매우 크다는 것을. 일 하지 않고 받는 월급의 기쁨을. 오늘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날이 적당하지 않아서 붙는 온갖 일 하기 싫은 이유들을. 너와 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는 순간, 또는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조직인들을 한 단어로 줄이면 바로 '월급 쓰레기(=월급 받는 쓰레기)'이다.

월급을 주는 고용주 입장에서는 천인공노할 일이지만, 솔직한 말로 월급 쓰레기였던 적이 한 순간도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조직인은 없을 것이다.

"나는 숨 쉬는 들숨과 날숨 사이사이마다 늘 조직을 생각하고 매 순간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였다."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출근길에 작은 접촉사고로 심한 중상은 아니고 생명에 전혀 지장도 없고 후유증도 없는 전치 4주 정도의 부상으로 한 2주 정도만 입원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혹시 나만 해본 것인가? '올해 크리스마스는 일요일이네! 1월 1일도 일요일이네! 휴일이 이틀이나 사라졌어, 젠장! 망했다!!' 새해 달력을 보면 휴일과 요일부터 따져보지 않는가?


   *출처: tvN 미생(2014)




그렇다. 모든 조직인들은 본태성(本胎性) 월급 쓰레기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자기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이 월급 쓰레기 유전자는 한결같이 우리의 조직생활을 위협한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자유'를 가지기보다는 단지 그러한 '자유를 갈망할 자유'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사회화되고 문명화된 우리는 유전자의 발로를 적절히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의식에 내재된 월급 쓰레기 유전자가 지나치게 행동으로 발현되면 진정한 조직의 쓰레기가 되고 조직에 의해 치워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책임감이라는 축복이 월급 쓰레기 유전자를 컨트롤하는 매개 역할을 하곤 한다.

하지만 월급 쓰레기의 출현을 조직구성원 개인의 인성이나 성숙의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문제의 해결 또한 개인의 자아성찰이나 자기비판만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개인의 본능은 월급 쓰레기이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본능을 억제하는 건 무엇보다도 조직이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 적절한 인사이동, 승진이나 성과급 등의 인센티브 설계, 합리적 조직문화 등이 그 조직의 성장과 직결되는 이유이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조직에 대한 사명감이라는 세뇌 작업이라도 해서 조직인의 월급 쓰레기 유전자를 잠재우고 조직의 공통 미션에 몰입하도록 유인해야 하는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듯이 조직인이 일하면서도 쓰레기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더불어, 나만 월급 쓰레기인가? 나는 왜 이런 것인가?라는 자괴감 또는 자기혐오에 빠져 있을 마음 여린 조직인들에게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그건 그대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조직인들을 월급 쓰레기로 만들지 않을 책임과 의무는 조직에게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 너두? 어! 나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