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억울해? 결혼생활?
호의와 배려에 고마움을 모르는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남들은 임신기간이 힘들다고 하는데 돌아보면 나는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11주나 되어 임신을 알게 돼서 그런지 하루 종일 배 탄 기분이라는 입덧도 없었고, 8개월 전까지는 몸도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임신을 축하해 줬고 예쁘고 좋은 말만 듣다 보니 뱃속의 아이 덕분에 나도 뭔가 특별해진 느낌이었다. 나의 감정이 바로 아이에게 연결된다는 생각에 상황은 변한 것이 없지만 항상 좋은 생각만 하고 행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도 내가 임신 중이라 그런지 가끔 먹을 것도 사다 주고 잘해주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행복했던 280일은 후딱 지나가고 어느덧 공포의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 나는 자연분만을 원했는데 아이 머리가 큰 편이라서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걷고 21층까지 걸어 다녔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 TV를 보며 출산에 좋다는 요가 자세를 연습하고 있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 사이로 뭔가 뜨끈한 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술 한잔하려던 그를 말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출산의 고통이야 말해 무엇하랴? 진짜 살면서 그렇게 아파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차마 수술해 달라는 말은 못 하고 제발 빨리 아이를 꺼내달라고 의사 선생님께 부르짖었다. 그와 중에 졸려서 잠을 참지 못하는 그가 야속했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출산의 기쁨으로 인한 감동의 눈물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출산을 하고 보니 인생에 있어 큰 산을 우리가 함께 넘었구나 하는 끈끈함이 느껴졌다.
아이를 낳고 보니 출산의 고통은 정말 별거 아니었다. 유선염이 와서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마다 정말 울면서 수유했다. 수유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그 고통이 떠올라서 무서웠다. 밤마다 깨서 우는 아이를 붙들고 왜 안 자냐며 나도 같이 울었다. 잠깐이라도 아이 맡길 사람 없이 온전히 혼자서 아이를 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몸도 여기저기 아팠다. 잇몸이 약해져서 이도 흔들흔들하고 소파에 살짝 부딪혔을 뿐인데 발가락도 두 번이나 부러졌다. 그래서 깁스를 하고 아이를 돌보다 보니 그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그도 힘들었는지 나보고 당분간 친정에 가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친정에 가도 편의점을 운영하셔서 온전히 편히 쉬고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다. 몸이 아파 마음도 약해져 있을 때라 그런지 친정에 가있으라는 그의 말이 서운하고 야속했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가 좀 더 편히 지내기 위함 같았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각 방을 쓰기 시작했다. 한번 각방을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 어색하고 합치기 힘들 것 같아서 나는 반대했지만, 그는 출근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나를 설득했다. 그렇게 시작된 각 방 생활이 벌써 6년째이다. 그 당시에는 내가 육아휴직 중이었기 때문에 집안일도 육아도 거의 내가 전담했다. 바쁘고 피곤한 그를 배려해 내가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거기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 같다. 그는 나이는 젊지만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옛날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해서 운동이 하고 싶으니 한 시간만 아이를 봐달라고 해도 재우고 나가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나는 결혼하기 전에 이 부분으로 그에게 다짐을 받았었다. 아이를 낳아도 하루에 한 시간 운동하는 시간은 꼭 허용해 달라고 한 시간만 줄 것 같냐고 호기롭게 말하던 그였다.
문제는 집안 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이 패턴이 나의 복직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고 하원하면 일찍 퇴근한 그는 그저 누워만 있다. 서둘러 밥을 하고 먹이고 씻기고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어느덧 열시다. 나 혼자 발을 동동 거리며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부분을 개선해 보고자 표까지 그려가며 가사와 육아 분담을 해보았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집안 일과 육아에 대한 그의 기여도는 10%. 주말이면 낚시를 나가는 그를 대신해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모두 하다 보니 점점 지친다. 똑같이 일하고 사회생활하는데 그는 왜 이리 자유롭고 나는 버겁기만 한 걸까?
모든 관계에 있어서 가장 안 좋은 것이 억울함 인 것 같다. 그리고 이는 평등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당연해지고 어느 순간 억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억울한 마음을 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를 생채기 내는 것들에 반기를 들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나를 위한 선언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관계는 없다. 오늘도 결혼생활의 억울한 마음 때문에 힘든 당신. 당신의 호의와 배려에 고마움을 모르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노라고 외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