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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백 Oct 08. 2023

결정적인 사건

우리 부부가 남남처럼 각자의 삶을 살게 된 이유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사건은 있다. 우리 부부가 남남처럼 각자의 삶을 살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때는 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2020년이었다. 당시 할아버지께서는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셨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간병을 하고 있었다. 멀리 살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부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에 할아버지가 소천하셨으니 서둘러 올라오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들으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당장 올라가서 조금이라도 할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느긋했다. 지금 올라가도 제대로 상 준비도 되어있지 않을 것이고 차라리 뒤로 휴가 써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회사에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바로 출발해야겠다 싶어서 일단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하지 않는 그에게 아이 등원준비와 인천에 며칠간 머물 짐을 좀 싸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그때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린이집에 보낼 아이 식판 좀 닦아달라는 말에 그는 엄청 짜증을 냈고 나도 화가 나서 대충 아이를 등원시키고 회사로 향했다.

정신없이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짐 좀 싸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건만 바닥에 널 부러진 빨래도 그대로였다. 터질 것 같은 화를 꾹꾹 참고 꾸역꾸역 짐을 싸서 겨우 출발했다. 아침에 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는데 이미 오후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당시 막 코로나가 시작될 즈음이어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례식장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동생이 출산한 지 50일 밖에 안 되어서 아무래도 장례식장에 오래 있지는 못할 것 같으니 동생네 집에 아이를 맡기자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황당무계한 대답은 아이 엄마가 아이를 볼 생각이 없으니 자기가 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이해가 안 되었는데 마지막 카운터 펀치가 남아있었다.

인천으로 올라가는 중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내야 하는 기여금을 이번달 월급에서 한 번에 공제하겠다고. 전화를 끊고 그래서 이번 달 월급은 적을 것 같다고 그에게 사정 설명을 했다. 이야기를 들은 그는 앞으로는 각자 경제관리를 하자고 했다. 결혼하고 그전까지는 남편과 나의 소득을 내가 관리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지금 이 상황에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있었을까? 나에게는 선긋기 같이 느껴졌다. 정말 이 사람이 앞으로 나와 같이 살 생각이 있는 걸까? 단지 내가 바란 건 그저 따뜻한 위로였는데.. 힘들고 어려울 때 정서적인 지지나 위로가 되어줄 생각이 없는 그를 붙들고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이날이 우리 부부에게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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