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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백 Sep 19. 2023

세이노 남편 그리고 마살이

남의 편이라 남편? 임신 11주가 될 때까지 모른 둔팅이 엄마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예상되는 마찰과 어려움 그리고 희생을 감수하고 하나가 되기로 결혼을 결심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혼을 통해 내가 바랬던 건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일을 하던 그리고 그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건 항상 지지하고 응원하는 내 편을 만들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팍팍하고 살기 힘든 세상, 밖에서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주는 스트레스와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온전한 내 편의 따뜻한 말과 응원. 그리고 그 정신적인 지지 안에서 날마다 함께 성장하는 삶. 어찌 보면 내가 결혼과 부부생활에 대해서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걸까?


그와 항상 트러블이 잦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 이 사람은 내 인생에 태클을 걸고 싶어 나랑 결혼했나? 나는 왜 맨날 힘들게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걸까?' 내가 무슨 제안을 해도 항상 그의 대답은 노였다. 싸울 생각 없이 그의 기분이 좋은 날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봤다. 왜 맨날 내가 물어보면 무조건 노라고 하는지. 그는 기본적으로 항상 내가 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도 '적당히 해'였다.

사업을 하다 망한 우리 아빠를 들먹이며 너도 장인어른을 닮아 현실을 모르는 것 같아 자기가 항상 자제시키고 노라고 하는 거라고 말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싸우기 싫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배우자인 나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씁쓸하고 슬펐다.

세상에 나가 싸울 힘을 가정에서 비축해야 하는데 나의 모든 신경과 에너지를 집에서 소비하고 있었다. 대화 없이 적막한 집이 나에게는 더 불편하고 힘들게 다가왔다.


그는 빨리 아이를 가지기 원했고, 아이를 낳으면 좀 다를까 싶어 임신을 준비하던 때였다. 곧 임신하고 출산하면 당분간 해외여행은 어려울 것 같아 그전에 해외여행 한번 가자고 조르던 중이었다. 역시나 그의 대답은 노!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나의 간절한 마음에 하늘이 감동하셨는지 회사에서 2주간 해외연수를 갈 기회가 생겼다. 기쁜 마음에 그에게 전화했지만 돌아오는 건 축하가 아닌 안된다는 단호한 대답이었다. 8월 말에 발표가 났고 10월 가기 전까지 근 한 달간 이것 때문에 서로 실랑이했다. 그는 절대 안 된다며 자기가 전화할 테니 상급자 전화번호를 대라고 했고 나도 무조건 갈 거라며 물러나지 않았다. 사실 이해가 잘 안 되었다. 20년 넘게 근무해도 생길까 말까 한 좋은 기회인데 축하해 주기는커녕 가지 말라니.. 남들도 다들 축하해 주는데.. 좋은 일이 있을 때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서로 위로하는 게 부부 아닌가? 이 소중한 기회를 결혼했다는 이유로 남편의 허락이 없다고 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강행해서 유럽행 비행기에 탔다. 떠나기 전날 그는 가서 쓰라며 나에게 용돈을 주었다.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마음 편하게 갈 수 있게 진작 허락해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었다. 오래간만에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 게다가 유럽이라니. 정말 꿈만 같았다. 그림같이 예쁜 풍경들을 보며 마음껏 즐기고 또 많은 생각을 했다.


그가 유럽행을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는 임신 준비 때문이었다. 나는 오히려 아이가 있으면 이런 기회가 와도 가기 어려우니 아이가 생기기 전에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연수를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예약했다. 당시에 생리불순이 있던 나는 그만큼 임신이 어려웠다. 그래서 검진도 하고 배란일도 받을 겸 병원을 찾았다. 한참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은 "아기 있는데요?"라는 충격적인 말을 나에게 던지셨다. 그 순간 정말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그동안 내가 했던 나쁜 짓? 들이 영화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음주, 두통약, 마라톤, 비행기, 해외연수... 기쁨의 눈물이 아닌 후회와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유럽에 가기 전에 혹시나 싶어 테스트를 했었고 임신이 아니라는 결과에 마음 편하게 밤마다 맥주와 와인을 즐겼다. 그런데 임신이라니.. 심지어 뱃속의 아이는 곰돌이 젤리 시절을 지나 내가 봐도 손발이 다 보였다. 11주가 될 때까지 임신 사실을 모른 둔하디 둔한 둔팅이 엄마. 미안한 마음에 내가 계속 눈물을 그치지 못하자 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며 마라톤도 해외여행도 이겨내고 엄마 몸에 딱 붙어있는 이 아이는 분명 건강하게 태어날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그렇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1차 기형아 검사까지 마치고 집에 왔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얼마나 마음 졸이며 걱정했는지 모른다. 혹시 나의 불찰 때문에 아이가 건강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사실 병원에 가는 길에 작은 접촉사고가 있었다. 병원 예약시간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나는 옆에 주차된 차를 긁고 말았다. 사고 뒤처리를 하고 무거워진 마음에 병원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간 것이었다. 만약 그때 병원을 안 갔더라면 아마 더 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랫동안 임신을 기다려온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듣겠냐고. 그는 나쁜 소식 먼저 말해달라고 했다. 사고 소식을 전하고 뒤이어 임신 사실을 말했더니 그는 사고 덮으려고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며 초음파 사진 먼저 보내보라고 했다. 상당히 차를 아끼는 사람이라 또 엄청 깨지겠구나 생각했는데 임신 때문인지 화를 자제하는 게 보였다. 전화로 임신 소식을 알리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장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그가 꼭 안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온통 차를 향해 있었다.


집으로 들어와 같이 저녁을 먹으며 아이 태명을 정하기 위해 대화를 나눴다. 그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유럽을 다녀온 아이니 너를 닮아 역마살이 장난 아닐 거 같다며 '마살이'라고 짓자고 했다. 장난스럽게 비꼬기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그날 나는 정말 놀라고 기쁘기보다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임신 시간 내내 마음이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평안이'라고 태명을 정했다. 그렇게 평안이는 우리 곁으로 왔고 어느덧 세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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