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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플브레이커 Oct 19. 2023

딸 같은 며느리는 될 수 없는 거구나

며느라기 벗어나기

예전부터 나의 결혼생활 로망 중 하나는 시부모님과 친 딸처럼 가까이 잘 지내는 것이었다. 결혼을 통해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실 부모님들이 더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결혼하신 분들이 아무리 해도 딸 같은 며느리는 될 수 없으니 빨리 정신 차리라고 며느라기 웹툰 좀 보라고 해도 그 말들이 와닿지 않았다. '며느라기' 시댁 식구에게 예쁨 받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 나에게도 며느라기의 시기가 있었다. 한창 신혼의 단 꿈에 빠져있을 무렵 그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 시부모님께 더 잘하려 노력했다.

외동아들인 그는 무뚝뚝하고 스무 살부터 독립해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딸을 바라셨던 시부모님은 우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정말 반겨주셨다.

내가 원한다면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실 테니 다시 공부를 해보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하셨고, 야근으로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할 때면 시아버님이 회사 앞으로 데리러 와주시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는 주말부부였고 그는 지방에 있었다.) 딸처럼 아껴주시는 시부모님의 마음에 나도 감사함을 느껴서 퇴근하며 거의 매일 한 시간씩 시부모님과 통화하곤 했다. 시부모님을 따라 산악회에 가기도 하고 다니기 싫어하는 그 대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의 부모님에게 잘하면 그도 기분이 좋고 나의 부모님에게도 잘하겠지 하는 마음.


내가 시부모님께 하는 것을 지켜본 주변의 결혼한 선배들은  앞으로 쭉 계속할 수 없으면 적당한 선을 지켜야 한다면서 초반에 잘하다가 나중에 못하면 되려 원망만 듣게 된다고 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저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왜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이제 막 결혼해서 며느라기의 시기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 나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시부모님과 관계가 틀어지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전히 좋으신 분들이지만 살다 보니 마음이 예전 같지만은 않다. 이는 시부모님도 느끼실 테고 서운해하실 것 같다. 서운해하실 것을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 마음이 죄송스러울 뿐. 딸처럼 대해주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 나에게도 종종 있었다.


시댁은 아버님이 종손이 아니셔서 명절에 따로 음식을 준비하지 않으시고 제사를 모시는 친척집에서 모인다. 반대로 우리 친정은 아빠가 맏이 셔서 명절마다 음식 준비로 분주하다. 임신하고 맞는 설 명절에 제사 모시는 친척집에도 가지 않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전을 부치겠다고 하셨다. 며느리도 있고 하니 같이 해보고 싶으셨나 보다 좋게 생각했다.  손이 크신 어머니는 재료들을 정말 많이 준비하셔서 제사를 지내는 우리 집 보다도 그 양이 많았다. 같이 전을 부치던 그가 어머니께 한마디 쓴소리를 던졌다. '자기 평생에 명절에 엄마가 전 부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며느리 들어왔다고 시집살이시키는 거냐고' 말릴 틈도 없었다. 마음이 상하신 어머니는 '너도 너랑 똑같은 아들 낳아보라면서' 화를 내셨다. 무사히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시부모님 드리려고 준비한 용돈이 생각났다.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짐을 챙기느라 정작 용돈 드리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아직 멀리 가지 않았으니 그에게 차를 돌려 용돈을 드리고 가자고 했으나 귀찮은 그는 그냥 계좌로 부쳐드리라고 했다. 전화로 어머니께 용돈 드리는 것을 깜박했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대뜸 나에게 '너는 젊은 애가 왜 그리 깜박깜박하냐며 치매 조심하라'고 하셨다. 용돈을 계좌로 보내드리면서 기분이 썩 좋지 만은 않았다. 바로 차를 돌려 용돈을 드리고 갔으면 이런 소리 안 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차를 돌리지 않은 그에게 짜증이 났다.


살면서 그와 사소한 일들로 갈등이 쌓이고 서로 상처를 받으면서 신혼 초 그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 그의 부모님께 잘하고 싶은 마음도 점점 옅어졌다. '처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는 속담처럼 사실 내 부모님도 아닌 상대방의 부모님에게 잘하려면 먼저 상대가 나에게 잘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서 우리만의 가정이 생기고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점점 안부 전화도 뜸해졌다. 하루는 시아버지가 나에게 전화하셔서 시어머니가 서운해하시니 자주 전화드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되묻고 싶었다. 아드님에게도 처가에 자주 전화드리라고 말씀하신 적 있는지.. 사이가 소원해지고 각자의 삶을 살다 보니 사실 그는 친정 가족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고 심지어 장모님 환갑에도 전화 한 통 드리지 않았다. 같은 해에 환갑이신 시어머니께는 열 돈짜리 팔찌를 해드리면서..


어느 순간 내가 부모님께 정말 불효를 하고 있구나 느낀 적이 있다 친정에 아이와 혼자 다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이 진심으로 걱정하고 안타까워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결혼한 자식이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는 바로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인 것 같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결혼생활이 끝나기 전까지는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아도 시부모님께 전혀 내색하지 않았는데 우리 부모님만 상황을 아시고 속상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시댁에 가도 낚시를 가는 그를 보면서 하루는 시어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남자들도 뚱뚱한 노래방 도우미는 싫어한다고' 그러면서 그가 낚시하며 밖으로 도는 것이 마치 꾸미지 않는 나의 탓인 양 살을 빼라고 하셨다. 그때 느꼈다 ' 아, 정말로 딸 같은 며느리는 될 수 없는 거구나'

어머니는 아무 생각 없이 하신 말씀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정말 큰 상처가 되었다. 내가 어머니 딸이었어도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주말마다 낚시를 나가는 사위를 불러다 혼내시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부모님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서운할 뿐ᆢ여전히 갈 때마다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혹여 그와의 인연이 끝난다 해도 시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시부모님도 얼마나 외로우실까.


나와 같은 로망을 가지고 며느라기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ᆢ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맞는지? 끝까지 이 텐션을 이어갈 수 있는지? 굵고 짧은 것보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때론 현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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