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예행연습 혼자 살기 테스트
1년간의 지원생활 다시 돌아간 주말부부
어느 날인가부터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포근하고 안락한 공간이어야 할 집이 나에게는 세상 어색하고 불편한 곳이 되어버렸다.
대화 한마디 없는 적막한 식사시간도 괴로웠고, 그가 집에 있으면 괜히 눈치 보게 되는 내가 싫었다. 큰소리 내며 싸우지 않았을 뿐이지 매일 무언의 전쟁으로 집안이 살얼음판 같았다. 아이가 있음에도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며 룸메이트보다 못한 동거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정서적 이혼 상태.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 나와 같이 살고 싶은지? 묻는 나의 질문에 그는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고 답했다. 그때부터 이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책으로 배우는데 익숙한 나는 결혼생활과 이혼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타들어가는 마음을 다스렸다.
.'아니면 말고'라는 쉬운 마음으로 결혼을 결정했다가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만큼 내 인생에 있어 더 이상 후회가 없도록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싶었다.
아이도 있고 이혼에 관한 결정은 결혼을 결정할 때보다 더 어렵고 고민이 되었다.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가운데 이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혼자 아이를 케어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이혼하고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가지 생각과 걱정이 밀려들었다. 매일 답 없는 고민만 이어가다가 이혼하기 전에 스스로를 테스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4년의 본원 근무 후 1년간의 지원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지원은 가까이는 출퇴근이 가능한 한 시간 내부터 가장 먼 곳은 편도 1시간 40분 정도로 그 경우 보통 관사생활을 한다. 물론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곳으로 인사희망원을 쓸 수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 1년간 관사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4살이었던 아이와 함께 관사로 이사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말부부가 되었다.
사실 떨어져 지내면서 내가 바랐던 건 주중에 혼자 외롭게 지내다 보면 그가 가족의 소중함을 좀 더 느끼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나와 아이에 대한 애정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는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맞는지 그는 그저 자유를 만끽하기에 바빴다. 더 자유로워진 그는 낚시에 몰두하며 우리가 집에 오는 주말에도 낚시를 다녔다. 관사생활을 하는 1년 동안 그가 우리를 보러 온 적은 딱 두 번이었다.
아이와 코로나에 걸려 단칸방에서 끙끙 앓는 중에도 그는 괜찮냐고 전화만 할 뿐 약도 먹을 것도 챙겨주지 않았다. 결국 약은 회사동료가 대리수령해 주고 일주일 동안 먹을 것은 마트에 전화해 배달을 부탁했다. 나야 그렇다 쳐도 아이는 보고 싶지 않은지 전화도 잘하지 않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아이도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해 크게 타격을 받는 것 같지 않았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아빠를 찾는 일은 거의 없었고 주말에 집에 왔는데 아빠가 없으면 낚시 갔나 보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듯했다.
나 혼자 아이를 케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는데
좀 힘들긴 했지만 막상 닥치니 다 할 수 있었다.
밤새 야근이 필요한 날엔 책상 옆에 이불을 펴두고 아이를 재우고 일했고, 아이가 다쳤을 땐 혼자 응급실도 데려갔다. 그 가운데 아이와 나사이에는 뭔가 더 끈끈한 것이 쌓이고 있었다. 물론 독박육아로 내 시간이 1도 없고 쉴 시간이 없다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들 긴했지만 돌아보면 아이와 정말 많은 추억을 쌓았고 행복했다.
관사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이제 우리가 따로 생활하니 더 이상 공동생활비도 낼 수 없다고 했다. 각자 벌어서 각자 생활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치사해서 더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 케어하는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데 1년간 그는 나에게 생활비로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런 그가 시댁에는 500만 원짜리 안마기며 냉장고며 필요한 것을 턱턱 사드리는 것을 보고 친정 부모님께 용돈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한 내가 참 바보같이 느껴졌다.
떨어져 지낸 1년이라는 시간은 금방 흘러갔고 다시 인사희망원을 내는 시기가 돌아왔다. 이혼할지 말지 1년 후에는 결정이 나겠지 했는데 갈팡질팡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객관적인 상황만 보면 이혼하는 게 맞는데 왜 이 결혼의 끈을 놓지 못하는 건지 나도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본원으로 복귀해 다시 그와 한집에서 살아야 할지 아니면 지원 근무를 연장해 좀 더 따로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결혼을 결심할 때처럼 같이 살 때와 따로 살 때의 장단점을 적어보고 지원근무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인생사가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 당연히 연장되리라 생각했던 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본원발령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