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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백 Oct 21. 2023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하는 시점에 담당업무가 협의이혼?

법원 협의이혼 담당자에게 듣는 협의이혼 에피소드

본원으로 복귀해 그와 함께 살 것인지 아니면 지원 근무를 연장해 계속해서 따로 살 것인지 긴긴 나의 고민이 무색하게 덜렁 본원 발령이 나버렸다. 당연히 연장될 거라 믿고 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았다. 때마침 나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와서 따로 살면서 해보려고 준비하던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낙심하던 찰나 본원에서 내가 맡게 된 업무가 협의이혼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이 시점에 담당업무가 협의이혼이라니 운명 같은 이 상황에 헛웃음이 났다. 한편으로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협의이혼 업무를 하며 다양한 이혼 케이스를 수집하고 나의 이혼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협의이혼 업무를 담당하면서 놀란 사실은 생각보다 이혼의 절차가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 이혼의사와 친권. 양육에 관한 합치만 있으면  몇 장의 서류제출만으로도 이 힘든 결혼생활과 어려운 관계들을 단칼에 끊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TV 등 매체에서 보이는 이혼은 오래 걸리고 복잡하고 서로의 치부를 들춰가며 치고받고 싸우는 난장판이었는데 생각보다 이혼이 너무 쉬웠다. 업무 인수인계를 해주신 50대 중반의 계장님께서 그래서 협의이혼 업무를 하면 더 조심해야 된다고 조언해 주셨다. (본인도 협의이혼 업무를 하시며 이혼생각을 하신 적이 있나?)


협의이혼 업무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다양한 형태의 부부와 이혼사유들을 업무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이제 갓 스무 살 넘은 햇병아리 부부들부터, 거의 아빠벌로 나이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  노령연금 수령을 위해 가장 이혼을 하시는 백발의 황혼 부부들까지.. 외도, 성격차이, 고부갈등, 빚, 경제적 문제, 폭력, 심지어 교도소 수감까지 이혼의 사유도 참 버라이어티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협의이혼 에피소드들을 꼽아보자면 하루는 인형같이 예쁘 게 생긴 여자분이 협의이혼서류 접수를 위해 민원실을 찾아오셨다. 그녀가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할 정도로 여자가 봐도 너무 섹시하고 매력적이었다. 당연히 20대 초반 이겠거니 생각하고 서류 검토를 하는데 웬걸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40대였고 심지어 아이도 두 명이나 낳은 몸이었다. 이혼 경력만 세 번. 너무 예뻐서 남자들이 가만두지 않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서류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찰진 욕설이 심상치 않았다. 주변에 사람이 있건 없건 신경 쓰지 않고 남편에게 끊임없이 수위 높은 욕설을 쏟아붓고 있었다. 아, 이래서 세 번이나 이혼을 하셨고 또 서류를 접수하러 오셨구나 수긍이 갔다. 확인기일에도 그녀는 가슴골라인과 티팬티 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하얀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와서 욕설 폭격을 퍼부으며 협의이혼 법정의 분위기를 흐렸다. 얼굴이 아무리 예뻐도 언행이 그와 같으면 함께 살기 힘들 것 같다.


한 번은 아이가 6명인 부부가 협의이혼을 접수하러 오셨는데 서류를 검토하다 보니 자녀 중 한 명이 혼외자였다. 혼외자를 포함해서 자녀 6명의 양육을 양육비도 없이 어머니가 담당하시겠다고 하셨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하시는 것 같았고 그래서 양육비도 따로 정하시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기른 정이 낳은 정보다 크다고 하지만 이혼하는 마당에 혼외자인 자녀까지 양육하시겠다는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심지어 아이가 한 둘도 아니고 여섯 명이나 되는데..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사실 법적으로는 두 분 사이에 자녀에 대해서만 친권과 양육을 결정하기 때문에 혼외자는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 서류상으로는 그렇지만 아마도 그 혼외자까지 양육하고 계실 것 같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협의이혼에서 가장 첨예하게 갈등이 대립되는 부분이 바로 양육비이다. 아무래도 돈 문제가 가장 현실적이기도 하고 이혼이 성립되면 바로 이행해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행이 안될 경우 양육비부담조서로 바로 강제집행이 가능한 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제일 많이 물으시는 질문이 양육비를 얼마로 해야 하는가?인데 사실 이는 따로 정해진 기준이 없다. 협의이혼은 말 그대로 당사자의 협의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육비는 0원이 될 수도 있고 한 달에 1000만 원이 될 수도 있다. 양육비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가정법원에 양육비부담심판 청구를 하여 심판정본을 제출할 수 있고, 그도 안될 경우 이혼 소송으로 진행해야 한다. 소송으로 가면 기간과 비용, 감정적 소모가 많은 만큼 양 당사자간에 잘 조율하여 협의이혼으로 끝내는 것이 서로 윈윈이라고 생각한다. 양육비에 관하여 양쪽의 입장이 다른 경우 법원의 양육비 산정기준표를 참고하면 좋다. 그리고 쌍방에 협의하여 협의이혼으로 끝나더라도 추후에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 법원에 양육비 변경 청구를 할 수 있다.

하루는 협의이혼 확인기일을 준비하면서 자의 양육과 친권에 관한 협의서를 검토하는데 양육비 부분에 떡하니 500만 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자녀가 두 명이시니 월 1000만 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사자에게 전화를 걸어 진짜로 월 1000만 원을 지급하시는 게 맞는지 일시금을 잘못 적으신 건 아닌지 확인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러오는 아버지의 대답은 힘들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벌어서 매달 보내주시겠다는 거였다. 괜스레 내가 다 감동하는 순간이었다. 그런가 하면 비양육자가 아이들을 만나는 권한인 면접교섭에 관하여 '나는 아이들을 안 볼 것이니 필요없다'라는 분들도 많다.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이 받을 상처와 영향 그리고 면접교섭은 부모의 의무라고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분들이 참 이해도 안 되고 씁쓸했다. 이혼이 아무리 개인의 선택이라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영향받을 자녀에 대한 배려와 생각이 1도 없다는 사실에 괜히 감정이입이 되며 화가 났다.


이 밖에도 협의이혼 업무를 하며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접수대 앞에서 백일도 안된 아이를 안고 몸싸움을 하시는 분들을 말리기도 하고, 이혼을 고민 중이신 어머님의 신세한탄을 들어드리며 상담도 해드리고, 할아버지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가짜로 협의이혼 서류를 접수하시는 귀여운 할머니도 만났다. (할아버지와 함께 서류를 접수하신 할머니는 할아버지 겁주려고 오셨다며 몰래 서류를 폐기해 달라고 하셨다) 민원인과 협의이혼 담당자로서 접수대를 마주하고 앉아있지만 사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계속 같이 살아야 할까? 아니면 이혼해야 할까? 날마다 고민의 연속이었다. 협의이혼 업무를 담당하면서 개인적으로 나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고 나도 그들처럼 용기 있게 결단을 내리기를 바랐다. 결단력 있고 실행력 있는 내가 왜 이 문제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갈팡질팡하는 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었다. 그렇게 우유부단하는 중에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협의이혼 업무도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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