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함께 하는 삶
우리가 다시 남자와 여자로 돌아갈 수 있을까?
1년간의 관사생활을 마치고 본원 발령으로 그가 살고 있는 집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사실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동안 따로 살면서 생각도 라이프 스타일도 더 많이 달라졌을 텐데 과연 우리가 트러블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주말마다 다니기는 했지만 1년 동안 방치된 집은 거의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 수준으로 지저분했다. 입주청소 수준으로 대대적인 청소를 하고 그동안 쌓아두었던 짐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함께 하는 삶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관계도 정리가 좀 필요했다. 그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행복하단다. 결혼하고 아이가 있음에도 자기가 버는 돈 다 쓰며 주말에는 게임하고 낚시 다니면 나라도 행복하겠다. 행복하다는 그에게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이 행복하지 않고 여자로서 더 사랑받고 배려와 존중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남은 인생을 oo이 엄마, 아빠가 아닌 남자와 여자로 살고 싶은데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묻자 그는 가능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 그의 말과 행동에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우리는 섹스리스 부부다. 떨어져 있는 동안 주지 않던 생활비 부분도 협의해서 반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집안일도 반씩 나누면 좋았겠지만 가끔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직접 요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1년 동안 아이도 많이 자라서 그런지 육아도 한결 수월해졌다. 떨어져 있는 동안 그다지 아빠를 찾지 않던 아이도 하원하고 집에 아빠가 있으면 좋아했다. (아무래도 아빠는 TV와 게임을 마음껏 시켜줘서 인 듯) 그동안은 독박육아로 저녁에 자유시간은 꿈도 못 꿨는데, 아무래도 맡길 사람이 있으니 운동도 하고 회식도 참여하며 좀 더 삶에 여유가 생겼다. 혼자 할 때는 힘들긴 해도 할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독박육아에서 벗어나니 그동안 어떻게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날 선 대화와 눈빛으로 감정이 상할 때도 있기는 했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그 안에서 스스로 회복하고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결혼한 선배들이 10년쯤 지나면 서로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하면서 맞춰지고 덜 싸운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지 어느덧 우리가 만난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육아도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이 상황에서 끊임없이 이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돌아보게 되는 건 지금의 내가 행복하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행복한 날들을 꼽으며 달력에 체크하고, 매일 일기에 사랑받는 여자라는 목표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어느 날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나를 더욱 절망스럽게 했다. 그도 문제라고 인식을 해야 그나마 개선의 여지가 있는데 지금 행복한 그는 우리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신혼 초부터 서로를 더 잘 알고 더 잘 사랑하기 위해 같이 부부상담을 받아보자고 권해봤지만, 그는 '네가 내 말을 들으면 되는데 왜 남의 말만 들으려고 하냐'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워 거부했다. 결혼을 통해 내편을 만들고 정서적 지지를 바랐던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정서적 공허감이 더 커졌던 것 같다. 내 안의 내면아이는 내가 아이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와 응원을 받고 싶은데 아이에게서는 얻을 수 없고, 남편과도 정서적 교류가 잘 되지 않으니 항상 외롭고 혼자인 것 만 같이 느껴졌다. 가끔 백발의 노인분들이 두 손을 꼭 잡고 산책하시는 것을 보면 그렇게 아름답고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꿈꾸는 결혼 생활도 그런 것인데 과연 이 사람과 나이 들어서도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아이가 있으신 분들은 이혼을 고민하는 데 있어서 더 신중하고 고민이 많으실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나의 행복을 위해 아이에게서 완전한 가정 아빠 또는 엄마를 잃게 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이혼 후에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혼자서도 지금처럼 좋은 환경을 아이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지? 날마다 고민한다. 소원이 뭔지 물을 때마다 우리 가족의 행복이라고 답하는 아이 앞에서 더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아프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부로서 아이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깔끔하게 헤어져서 각자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양육자의 행복은 아이의 행복과 직결되는데 같이 살면서 부부라는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날마다 지지고 볶고 싸우며 아이에게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보단 차라리 따로 사는 것이 아이를 덜 혼란스럽게 할 것 같다. 정답은 없기 때문에 나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시간, 돈, 노동력을 나누는 결혼에 있어 갈등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성향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온 두 사람이 부부라는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문제를 대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물러서 타협할 줄 아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또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해 예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싸움은 감정을 건드린 말에서 시작된다. 본질을 보라 대화를 통해 우리가 결국 얻고자 하는 바는 밀당의 감정싸움이 아니다. 날 선 말로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기 전에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예쁘게 표현하라.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예쁘게 말하면 싸움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내가 결혼 생활에 통달한 사람 같지만 나 역시 머리로는 알고 실천이 잘 안 될 뿐이다. 글로 한번 더 쓰면 서 다짐한다.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