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잠깐씩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리면 그 중심에는 일 보다는 사람이 있었다. 직렬 특성상 길어야 2~3년만 있으면 발령이 나므로, 같이 근무하는 동안만 잘 지내면 된다. 그래서 다른 조직이나 직렬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지 않을 듯싶다. 실제로 근무가 힘들어서 인사팀에 전보를 요구하는 직원과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다행히 나에게 그런 경험은 없었으나, 인사팀에 메일을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업무연락 창을 열고 심호흡을 한 적은 세 번 정도 있다. 하필 그렇게 하고 싶게 만든 분은 모두 여성팀장님이었다. 내가 그분들께 업무적으로 많이 배운 입장으로서 감사하고, 종종 업무적인 빈틈을 보여드린 입장에서 죄송해야 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다만 업무와 상관없이 지극히 주관적으로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또한, 스물네 살부터 한 직장에서 근무하였기에, 다른 직장생활과는 비교해 보지도 못한 작은 경험 중 일부일 뿐이다.
<내가 힘들어했던 여성팀장님의 특징>
1. 휴가를 쓰지 않으신다. 본인이 휴가를 쓰지 않으시므로 팀원의 휴가도 싫어한다. 내돈내산 해외여행이나 주말에 가는 개인적인 교육조차 싫어하신다.
2. 새로 산 립스틱이나 구두에 대한 칭찬을 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신다. 본인의 취미생활인 십자수와 그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칭찬하고 호응해드릴 시간에 일하고 싶다.)
3. 회의 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신다. 명절에 나물을 오래 삶아서 시어머니께 혼났다거나, 아드님이 핸드폰으로 현질을 했다는 이야기들이다. (위 2번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라는 점이 다르다. 위로를 해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 무시하기가 더욱 힘들다. )
4. 퇴근 30분 전 팀 회식을 하자고 하시고, 선약이 있다고 하면 취소를 하라고 하신다.
5. 회식 후에 집까지 태워달라고 하신다. 집 앞에 도착하였으나 차에서 내리질 않으시고 한 시간 이상 말씀하신다.(그 이후로 나는 운전을 안 하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6. 댁에 실수로 두고 온 안경을 가지러 같이 가자고 하신다. 벚꽃 구경이나 인문학 강의도 같이 들으러 가자고 하신다.
7. 몸이 많이 아프신지,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신지, 키보드 치는 소리가 '타닥타닥'이 아니라 '파박파박'이다. (팀장님의 키보드와 마우스는 부서질 것 같고, 내 마음도 부서질 것 같다. 급한 결재가 있는 데 올리기가 두렵다.)
8. 자꾸 몸을 콕콕 찌르시고 툭툭 치시며 말씀하신다.(여자와의 스킨십은 그냥 싫다.)
9.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숨 넘어갈 듯이 웃으시고, 어떤 날은 화를 내신다. (혈압약을 드시고 계신데, 내 앞에서 쓰러지실까 봐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
10. 회식 후 여직원끼리만 카페를 가셔서 몇 시간을 말씀하신다. 나뿐 아니라 다른 직원이 타깃일 때도 많다. 이상하게 남이 당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더 힘들었다.
내가 이 분들과 일할 때 일부 여직원들에게서 ‘괜찮냐’는 질문을 참 많이도 받았다. 하지만 일부 남자 직원들에게는 ‘그분 나이스하지?’ 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nice’는 ‘좋은, 즐거운, 멋진’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중에서도 유난히 어감이 기분 좋고 시원시원한 느낌이다. 세븐틴의 노래 <아주 NICE>의 가사처럼 ‘온몸이 간질간질 두근두근한’ 그 기분 말이다. 하지만 이 분들은 나에게 감사하고 미안하고 따듯한 기분은 어쩌다 줄 수 있지만, 그 나이스한 즐거운 기분을 줄 수는 없다. 당연히 개인차가 있겠지만, 왜 남녀가 느끼는 것이 그렇게나 다를까?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분들은 외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이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직원 중 특히 편한 동성에게 표출되었다. 여유 없는 일상 속에서의 기쁨과 슬픔도 같은 여직원 앞에서는 더 이상 누르기가 힘들어 보였다. 자신의 외로움과 감정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친구나 남편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어보니, 친구와 남편에게도 말하기 힘든 일들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좀 받아드릴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든다. 그분들의 뜻대로 하지 않았고, 그것에 대한 그분들의 비난이 지나친 어떤 날은 인신공격의 느낌까지 받았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팀원들은 낮 시간에 화장실도 참아가며 빨리 일을 마치고 싶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일 뿐이다. 개인적인 삶을 지키고 싶은 욕구 때문에, 팀장님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 때면 나도 참 별로다. 왜 남자 팀장님의 외로움에 대해선 자책을 덜 느끼는 걸까?
이제 팀장 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 자신을 돌아보자 어느새 꽤 자주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부부싸움을 하거나 가족이 아프기만 해도 PC 앞에서 눈물이 투두둑 떨어지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이다. 헐! 위험하다! 시집살이도 당해 본 사람이 시킨다고 하지 않던가!!!
<다산의 마지막 습관>을 읽으며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모습과 맞닥뜨렸을 때 비난하고 혐오한다. 그래서 어른은 눈앞에 선 괴물이 혹시 거울에 비친 자신이 아닐까 점검한다”는 구절을 필사했다. 내가 어려워한 팀장님들은 같은 여성으로서 나와 너무 닮아서 내가 힘들어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직원에게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직원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여자 팀원에게만 또는 남자 팀원에게만 유독 힘든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직원들이 혼자 있는 날 보고도 외롭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 잘 대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과 미안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게, 적절한 자리를 잡아 나만의 세계를 가꾸고 싶다. 팀원이 내 세계로 스스로 걸어와 도움을 청할 때에 고개를 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들에게 좋은 팀장으로 기억되진 못하더라도, 발령 날 때 약간이라도 아쉬운 이별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직원이고 싶다.
혼자도 외롭지 않게 열심히 책 읽고 운동하기,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만들기, 비집고 나와야 좋을 것 없는 마음이라면 글에다 풀기. 이렇게 열심히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보니, 왠지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험난한 팀장님을 서너 분 겪었으니까, 힘겨운 후배들은 삼사십 명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그동안은 위를 보며 많이 배웠다면, 이젠 위아래를 두루 보며 더욱 많이 배울 기회가 다가온다.
직원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법칙이 있다.
「힘든 상사 질량 보존의 법칙: 이상한 상사를 만날 수 있는 양은 그 누구에게나 일정하다.」
실제로 몇 분의 힘든 팀장님들을 겪은 후, 좋은 팀장님들만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 법칙에 따르면 나는 이제껏 좋은 과장님만 만났는데, 앞으로 어떤 과장님을 만나게 될지 긴장되기도 한다. 나 자신이「질량 보존의 법칙」에 1g도 차지 안 하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 수도 있다. 부끄러운 행동과 말을 절제하고, 크고 작은 일상에 흔들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 살펴야 한다니 참 쉬운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