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나라도 그 말 좀 안 하고 싶다. 그런데 진짜 예전 같지 않다. 부서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10년 전쯤만 해도 아침마다 몇 명씩 모여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5분 정도 담소를 나누고 수고하라며 인사를 하고 각자 자리로 간다. 이제는 그런 모습은 상사 또는 동료들의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그나마 동료와 잠시 얼굴을 맞대는 시간은 정수기 앞에서 각자의 차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대부분은 피곤에 전 푸석푸석한 얼굴이다.
어제저녁은 잘 보냈는지, 아님 야근을 했는지 빠른 템포로 스치듯 대화한다. 잠깐이지만 오늘 스타일이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면 특별히 기분 좋은 아침이다.늘 뜨거운 물을 텀블러에 가득 담고 작두콩 차를 넣었다. 그걸 보고 커피를 원래 안마시냐고 묻는 직원들이 있다. 집에서 마시고 출근한다고 대답하면 무슨 커피냐고 묻는다. 라테를 마시고 온다고 하면 대부분 반응이 비슷하다. “우와! 아이도 어린데 정말 부지런하다. 아침부터 우아하게 라테를 마신다니! 베란다 밖을 내다보며 마시는 널 생각하니 어울리기도 한다.” 앗! 그런 거 아닌데. 우리는 빨리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과장님께서 자꾸 쳐다보시는 것 같고,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에게 방해가 될까 불안하다.
최근 새벽 기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이보다 먼저 일어난 적이 없었다. 돌연변이 새벽형 인간으로 태어난 아이는 늘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나가자고 울었다. 지친 하루가 머릿속에 훤해서 진심으로 일어나기 싫고, 누가 깨우니까 더 일어나기 싫다. 그래도 벌떡 일어나게 해 주는 힘은 바로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닌, 커피에 대한 사랑이었다.
생명수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커피 머신 물통에 물을 넣는다. 잠결에 몇 번 물통을 떨어뜨려 윗부분은 깨져있는 상태이다. 커피 캡슐 중 카페인 강도가 제일 높은 것들은 혼자만 먹으려고 따로 보관해 놓았다. 우리 집에 있는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은 라테를 만들 수 있는 에어로치노가 장착되어 있는 모델이다. 출근도 겨우 하는 게으른 워킹맘은 이 우유거품기를 사용해 본 지 7년 정도 되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웨지우드 커피잔 세트와 프랑프랑 커피잔 세트는 식기세척기에 넣기 애매하니까 그냥 아직은 보기만 한다. 낡은 포트메리온 머그에 뜨거운 에스프레소 한 샷을 뽑은 후 차가운 우유를 콸콸 따른다. 비몽사몽 손가락에 힘도 없으니 많이 붓는 날도 있고, 적게 붓는 날도 있다. 그러면 매일 맛도 양도 다른 미적지근한 카페라테 완성. 그리고 식사교육에 실패한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며 벌컥벌컥 들이켠다. 기다리지 않은 하루였고 그날 계획된 그 무엇도 못할 것 같다가도 그걸 마시는 순간 다 괜찮아진다. 오늘 하루 잘 해내고 말 거야.
아침에 식탁 앞에 서서 종종거리며 마시는 그 커피는 낮에 일하면서 먹는 아메리카노, 저녁에 친구와 함께 먹는 아인슈페너와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전 날 자기 전까지, 어쩌면 자면서도 버틸 자신이 없던 그 ‘내일’이라는 하루가 눈뜨자마자 마시는 씁쓸하고 고소한 커피 한잔 덕분에 그냥 그럭저럭 괜찮을 ‘오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소중한 커피이기는 하지만 부지런하고 세련된 나의 아침을 상상하는 동료들에겐 왠지 미안해진다. 자꾸 그 동료를 다시 불러서 제발 오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