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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Jun 03. 2021

공무원체 말고 휴먼공무원체

내 마음 속 답변

인터넷을 통한 민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공식적인 용어로 민원 상담 신청이라고 부르지만 보통은 이미 거절당한 건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많다. 전화로 문의하면 5초 만에 답변이 끝날 수 있는 간단한 질문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그것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전화로 음식을 시키는 것보다 ‘배달의 민족’ 같은 앱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고, 인터넷쇼핑몰 주문에 대한 문의나 교환 요청도 홈페이지 게시판을 이용하는 편이니 말이다. 밴드 ‘디어클라우드’의 베이시스트인 임이랑 역시 <아무튼, 식물>에서 가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오직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앱으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사이렌 오더’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민원인들도 인터넷을 통한 문의를 더욱 편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오고 있음을 체감한다.


행정기관 민원 서비스가 통합됨에 따라 인터넷을 통한 민원 제기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모든 민원 상담 신청은 국민권익위에서 운영하는 국민신문고(www.epeople.go.kr)를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들어온 민원은 민원 접수 부서에서 해당 부서를 찾아서 담당자를 지정해 준다. 담당 부서가 잘못 지정되면 재지정 요청을 해야 하고, 그 사이에 민원처리기한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 담당자가 맞게 지정되었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전산 시스템으로 연계시켜서 민원이 들어왔다는 결재를 부서장님까지 차례로 밟아야 한다. 그 후에 답변을 작성할 수 있고 같은 과정으로 결재를 받는다. 결재가 무사히 나면 그 이후에 완료 버튼을 눌러야 민원인에게 답변 내용이 공개된다. 직접 응대나 전화 답변과 내용은 같지만 유독 답변서가 공문서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아무래도 눈앞에 민원인이 있고, 동시에 전화 응대도 해야 하니, 국민신문고로 들어온 민원은 즉시 답변이 안 될 수 있다. 민원처리기한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크든 작든 그 답변 내용을 부서장님까지 결재를 받아야 하니 더욱 맘먹고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다. 처리기한이 임박하여 답변을 작성했는데 결재가 바로 안 나면 민원 부서에서 독촉 메일을 받는다. 민원인이 항의 전화를 할까 봐 안절부절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답변하는 것처럼 구어체가 가미되어 공무원스럽지 않게 작성하면 결재가 반려될 수 있다. 외부로 나가는 것이다 보니 작은 민원도 윗분들을 신경 쓰이게 하나 보다. 안 된다고 쓰되 2차 민원 발생을 막기 위해 기분 나쁘지 않게 쓴다. 절망스럽지 않게 쓰되, 괜한 기대를 품지 않도록 여러 번 수정한다. 그런 거는 내가 좀 한다. 종종 결재 반려되던 동료가 늘 결재에 무사통과되는 나의 민원 답변을 보더니 불만이라는 듯 말한 바 있다. “뭐야, 그냥 안 된다고 쓴 거잖아.”


안 된다는 말을 그렇게 공문서답게 답변하면, 민원인의 화를 북돋우거나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될 때가 있다. 아무 항의가 없을 땐 그분 성격대로 내지르지도 못하게 싹을 잘라버린 기분도 든다. 이제는 그런 경우는 문서가 나가기 전에 전화를 먼저 드린다. 요청하신 건이 왜 안 되는지 어눌하고 비전문적인 원래의 말투로 설명해 드린다. 경력이 쌓여도 나아지지 않는 없어 보이는 말투가 어쩔 땐 쓸모가 있다. 이 방법을 신규 직원들에게 알려 주면, 욕설을 하는 민원인이 많아서 싫다고 한다. 물론 나도 신규 땐 그게 끔찍이도 무서웠고 지금도 사실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안 된다는 답변이라고 고민과 공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된다는 답변에도 그 분 못지않게 기쁘다는 마음을 담고 싶을 때가 있다. 식상하지만 거짓은 아닌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끝인사도 하지 못하는 신세란! 때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공무원체가 아닌 휴먼공무원체로 답변하고 싶다.


「요청하신 내용은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좋은 의견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

「말씀하신 내용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지금은 규정상 그렇게 되어 있어서 번거로우시겠지만 협조 부탁드릴게요.ㅠㅠㅠㅠㅠㅠㅠ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더 좋은 대안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선생님께서도 좋은 방법이 생각나시면 연락 주시겠어요? 이 기관의 주인은 여러분이니까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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