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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Feb 24. 2022

산불비상근무를 통해 그려보는 인생곡선

회전목마

공무원을 하다보면 별의별 재난 비상근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중 면사무소에 근무하면 산불 경계경보 기간에 직원의 1/2이 비상근무를 해야 한다. 평일 저녁은 물론이고, 토요일 일요일 중에 하루는 꼭 근무가 걸리는 것이다.


산불이 나기 쉬운 건조하고 바람 부는 날씨는 여행 가기 딱 좋다 싶은 계절이다.  20대 중반, 나름 어린 나이에 꽃 피는 봄과 낙엽 지는 가을의 매 주말을 산불 근무에 바치는 건 우울한 일이었다. 그 당시 남자친구가 (대학 졸업 전 취업으로) 주말에만 원주에 올 수 있었다. 마음은 산이 아닌 콩밭에 가 있었다.


특히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은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과 붙어있는 연휴가 많아 산불근무도 많다. 면에는 캠핑장과 펜션이 많다 보니, 근무를 돌 때 마주치는 여행 온 사람들이 그토록 부러웠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주말에 비가 오기를 기다린 건. 비가 오면 산불 근무를 안 하니까. 



동과 본청 근무를 거쳐 30대 초반에 두 번째 면사무소 근무를 하게 되었다. 부시장님의 특별 지시사항으로 평일 밤 10시까지 산불근무를 할 때였다.(지금은 20시까지 한다.)


그땐 결혼 후였고, 임신 중이었다. 사무실 입구에서 남자 직원들이 당당하게 담배를 피워대던 시절이었다.(여긴 밖이라며?)


그렇게 후각을 비롯한 기관지는 혹사당했고, 청각은 군 비행기 소음으로 꽤나 피곤했다.


미각은? 산불 근무하는 날이면 매번 식사로 면사무소 옆에 있는 (위생이 좋아 보이지 않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짜장면을 며칠에 한 번씩 먹었다는 말이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우리 아이가 뱃속에서부터 짜장면 중독이 된 건... 지금도 다른 건 잘 안 먹고 짜장면에만 환장하니까.




아이를 낳고 복직하고, 십 년 가까이 본청과 사업소 근무만 하였다. 본청은 평시는 해당이 없고, 경계경보 발령 시에만 면 지역에 지원근무를 나간다. 본청 직원은 지정된 산불 감시 구역 현장을 내내 지켜야 한다. 자차가 있다면 담당 구역을 왔다 갔다 하며 연기 나는 곳이 있는 지 대기한다. 그 땐 주말에만 만날 남자친구는 없었지만, 주말에만 보육할 수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를 집에 두고 출근하려니, 아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면 지역은 어디에 배정되느냐에 따라 집에서 25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결국 아이를 핑계로 출발이 늦어진다. 고속도로에서 밟는다. 과속카메라 찍혀서 산불 근무수당을 고스란히 과속 과태료로 뱉어내기도 한다. 저녁 7시까지 9시간 동안 차에 혼자 있는 동안, 마음은 산이 아닌 집이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나자, 아침에 매달리는 아이를 가열차게 떨쳐내고 나온다. 헤어질 땐 속상해도 막상 출근하면 잊기로 결심한다. 근무 시간동안 들을 음악을 준비한다. 오래 전 과오를 떠올리며 과속하지 않는다. 비록 호텔이 아닌, 뙤약볕 차 안이라도 괜찮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산불만 나지 않으면 된다.


어떤 날은 근무가 해제된 후에도 잠시 귀가하지 않고 차에 있기도 한다. 남편에게 톡이 온다. " 비상 해제 됐는데 왜 안 와?" 남편에게 거짓 기상특보를 보낸다 . "이상하게 여기는 비가 안 오네?"





가끔 직원들의 산불근무를 대신해 주시는 팀장님도 계셨다. 직원들은 워낙 바쁘니까, 안 그래도 밀린 업무로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해야 하니까 배려해 주시는 것이다. 그걸 보고 한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입사부터 지금까지, 각종 비상근무들이 너무 싫었어. 하지만 나도 팀장님 정도 되면 그렇게 싫지는 않을 것 같아. 이렇게 바쁘면서 애 키우는 시절도 있었는데 뭐. 팀장 되면 애도 컸겠다, 일도 익숙하겠다, 주말 근무 하라면 하지 뭐~ 밤 근무 하라면 하지 뭐~."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난 팀장이고 오랜만에 산불근무가 있는 동에 근무하게 되었다.


아이가 다리에 매달려 울지는 않지만, 마음이 무겁기는 매한가지다. 주말에만 온전히 볼 수 있는 아이가 눈에 밟힌다. 오늘은 아토피가 심해질까 봐, 오늘은 감기 기운이 심해질까 봐, 오늘은 틱 증상이 심해질까 봐 여러 이유를 붙여 가며 마음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제일 불편한 건 난 왜 아직도 초과 근무를 쿨하게 하지 못하는가이다.


왜 아직도 근무를 위해 남편에게 미리 얘기해서 애를 봐야 한다고, 스케줄 조정을 해야 하는가. 남편과 비상근무가 겹치면 친정에, 시댁에 전화를 돌리며 기가 죽어야 하는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내 인생 왜 이렇게 변화가 없는가 하는 생각들이 호로록 붙는다. 물론 남편도 비상근무를 하기 전에 나에게 미리 알려 주며 스케쥴을 조정한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 하는 시간에 대해 나처럼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전통적 엄마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적 구조가 그대로이기 때문인가,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일단 고개를 조아리는 나 자신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이쯤 되면, 직원들 근무를 대신해 주진 못 하더라도 즐겁게 비상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알았는데.


이쯤 되면, 집도 좋고 차도 좋고 돈도 있을지 알았는데.


이쯤 되면, 꾸준한 운동과 아이의 통잠으로 만성피로가 사라져서 밀크씨슬 따위 안 먹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슬플 때마다 이 노래가 찾아와 라고 했던 소코도모의 <회전목마>가 생각난다. 매일 달려가는데 언제쯤 끈나는지 잘 모른다 했던가.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이라고 노래하는데 나의 산불 비상근무도 처음이나 지금이나 빙빙 돌아가며 같은 자리다. 


회전목마처럼 위로 조금 올라가는 듯했는데 다시 내려오고, 올라가는 듯하다가 다시 내려오는 꺾은선 그래프와. 앞으로 열심히 가도 가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원형 차트 느낌의 인생 곡선을 그려본다.




이어지는 강풍으로 산불 기사가 잇달아 보인다. 머리는 이미 봄이라 블라우스와 뷔스티에 원피스에 손이 가는데, 체감온도는 충분히 낮아지고 있다. 내가 제자리라는 생각은 마음까지 시리게 만든다. 어쩌겠는가. 빙글빙글 다시 달려야지. 회전목마의 노래가사처럼 '돌아가는 시곌 보다가 청춘까지 뺏은 현재. 탓할 곳은 어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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