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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Apr 30. 2022

직급과 식성

점심시간=근무시간

우리 조직 내, 나름 높은 분께서 점심시간에 오신단다. 나보다는 직급이 3단계쯤? 높은 분(이하 3장님)으로서 보통 나 같은(?) 평범한 직원들은 일 년에 한 번도 뵐 일 없는 분이다. 마침 우리 동에 있는 웨딩홀에서 행사가 있어 들리셨다가, 직원들 점심을 사 주시러 오신단다. 주무팀에서 열심히 선정한 장소는 <ㅊㅅ영양탕>. 3 장님이 그 음식을 드실 수 있는지 수행비서를 통하여 확인은 해 보았겠지만, 신규 때부터 보아 온 이 조직은 유난히 저 메뉴를 점심식사 접대용 메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처음 여기 보직받아 왔을 때도 '그것을 할 줄 아는지?' 질문받은 기억이 있다. '못 한다"가 아닌 '못 먹는다'로 대답하였는데 단체장이나 기관장 등 쉽지 않은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을 때마다 주무팀장님은 또 물어보신다.  그럴 때마다 난 같은 대답을 했고, 그날의 메뉴는 삼계탕으로 돌아섰다. 보통 4명이 식사를 하기 때문에 나 때문에 다른 분들도 삼계탕을 드셔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눈치 없는 척했다.






3 장님의 말씀을 수행비서가 전달하길, 요즘은 그 음식을 못 먹는 직원들이 많아져서 혼자 드시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먹을 수 있는 직원은 영양탕을 선택하는 분위기로 갔다. 그리하여 영양탕과 삼계탕의 비율은 50 대 50.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팀장 중에 삼계탕을 선택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찝찝한 기분 20과 팀원들을 웃기고 싶은 기분 80으로 이야기했다.


나 : 나 찍히는 거 아냐? 나만 삼계탕이야. 3 장님이 영양탕인데!


직원들: 그래도 팀장님, 영양탕은 안 돼요. 너무 귀엽고 불쌍하잖아요. (이들은 애견인이다.)




식사 내내 혼자 다른 자리에 떨어져, 이방인처럼 먹었다. 물론 직원들과 함께였지만 서로 불편했다. 다들 팀장은 저기 앉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 3장님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신 동장님과 팀장님들의 대화에 끼지 못한 그 상황은 퇴근 시간까지 재미있는 일화? 가 되었다. 함께 웃으며 받아쳤지만 속내는 영양탕을 못 먹어 루저가 된 기분이었다.




애견인인 우리 팀원들은 영양탕을 먹은 직원들을 볼 때마다 "멍멍아~ 멍멍아~"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물론 동장님께는 그러지 못했다.)


난 "나 3 장님 가시는데 악수도 못 했어. 난 찍혔다고!" 하며 상실감을 토로했다.




한 팀원이 말한다.


직원: 팀장님은 그래도 드셨어야죠. 그냥 삼키셨어야죠. 그것도 안 되면 3 장님이 쳐다보실 때 입에 물었다가 뱉더라도 영양탕을 선택하셨어야죠.


나: 주사님은 안 드셨잖아요.


직원: 전 못 먹어요. 아우.




과거를 떠올려 본다. 내가 함께 일한 팀장님들 중 영양탕을 못 먹는 팀장이 있었던가?


없어 제기랄..............






나는 점심 약속이 꽤 많은 편인데, 직원이 "약속 있으세요?"라고 물어보기 전에 미리 얘기한다.


왜냐하면 내가 팀원일 때 그렇게 미리 말해주시는 팀장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늦게 말씀해 주시면 팀원들과 "아~ 팀장님 약속 있는지 알았으면, 우리끼리 맛있는 거 미리 예약할걸." 이렇게 아쉬워하곤 했다.




나 없이 편히 먹으라고, 그 해방감을 아침부터 일찍 느끼라고 배려 차원에서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내가 없을 때만 얘네가 맛있는 걸 먹는다.




내가 말하는 맛있는 거란 : 햄버거, 떡볶이, 피자 같은 아이들. 어차피 짧은 점심시간과 부족한 식비로 먹을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으니까.




나랑 먹을 땐 : 해장국, 중국집, 돈가스, 백반, 해장국, 중국집, 돈가스, 백반.....


물론 내가 집에서 밥을 잘 못 먹다 보니, 가끔 밥에 환장하기도 하지만 나도 맛있는 거 먹고 싶다.  심지어 나는 해장국같이 국물이 있는 음식을 싫어하며, 중국집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또 떠올려본다.


내가 함께 일하는 팀장님들은 어떤 음식을 좋아했던가? 국물 있는 탕, 국수, 또는 돈가스...

아놔! 난 팀장이 되었지만, 아직 그런 것 안 좋아한다고! 제기랄.





팀원들과, 그리고 윗분과 윗 윗분과 윗윗윗분의 비위를 맞출 줄 아는 식성. 그 또한 나의 사회적 지위에 맞추어져 변하여야 하는가? 알고 보니 주무 팀장님도 그 음식을 원래 못 먹었지만, 여기서 근무하면서 배웠다고 한다. 세상엔 정말 배울 게 많구나.(다른 팀장님들도 여기 와서 배우신 건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면 빼박일까 봐.)


21세기의 새로운 트렌드에 따라 환경과 몸을 위해 좋아하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도 끊어야 할 것 같은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에게 다른 고기까지 권하는 이 조직. 적응 안 된다. 언제나 탈출을 꿈꾼다.






퇴근 직전, 본청에서 긴급 메일이라며 발송된 메일을 열어보지 말걸. <3장님 긴급 지시사항>이라며, 복지시설의 위생상태를 빨리! 점검해서 보고하란다. 나에게 왜 이러시는지. 그분은 내 얼굴도, 이름도, 업무도 모르시지만 그 분과 함께 영양탕을 안 먹은 날 하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삼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바이다. 제가 가실 때 악수만 했더라도 이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만?


나 : 아들~~ 엄마 오늘 기분 안 좋았쪄! 다들 영양탕 먹는데, 엄마만 삼계탕 먹어서 바보 된 기분이었쪄.

아들 : 영양탕?  영양?? 그 양?? 뿔 기다란~ 영양?

나: 으응... 그...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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