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5일, 파스텔 핑크색 셋업을 입고 첫 출근을 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공주 옷을 입을 생각을 했을까. 인사팀장님께서는 테이블로 날 따로 부르셨다.
<다른 동기들 중 네 명이나 국가유공자이다, 다른 직원들도 자격증이 있어서 밍밍씨만 유일무이하게 가산점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채점해 봐서 내 점수를 안다. 커트라인에 딱 걸리는 성적. 역시나 꼴찌로 합격했다는 말을 저렇게나 길게 돌려서 해 주신 친절한 분이셨다. 십칠 년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인사팀장님 자리에 계시면서 친절한 분은 흔치 않은 케이스다.
사무실에 가 보니 나와 나이가 제일 비슷한 직원은 9살 위의 남자 직원이었다. 채용 제한에 나이 제한이 풀린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다른 직장에서 이직한 30대 중후반의 직원들이 많았다. 그에 반해 나는 무경력의 백지였다. 면사무소 직원분들은 사소한 것까지 알려주시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면장님께서는 너처럼 면장님 커피는 나 몰라라 하고 자기 커피만 챙기는 직원은 처음이라고 매일 아침 타박하셨다. 그때는 면장님께 모닝커피를 타 드리던 시절이었는데도 늘 깜박했다. 출근할 때 그런 옷은 입으면 안 된다고 참 당혹스럽다고 머리를 흔드시곤 했다. 그래도 나는 웃었다.
뭘 봐도 즐겁던 나이, 가만히 있어도 웃상일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넌 뭐가 그렇게 좋냐는 질문을 받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줘야 하셔서 힘드셨을 텐데 잘 한다 해주셨다. 다른 팀 회식마다 초청받았다. 그때 함께 일하던 띠동갑 언니가 아이고 이뻐라 이뻐라. 잘 먹네 잘 먹네 하면서 소주를 가르쳐 주었다. 지금도 나의 술친구다.
이장님들도, 농협 직원분들도, 민원인들도 날 보면 신기해했다. 이 동네에서 젊은 여자분 처음 봐요! 농협 언니들이 여직원 모임에 날 끼워 주었다. 내 업무를 했을 뿐인데 민원인은 홈페이지에 칭찬글을 올려주셨다. 그래서 상을 받았다.
단순한 민원 발급을 해 주었을 뿐인데 고맙다고 손 편지를 보낸 민원인도 있었다. 행사 때 면에 방문하신 시장님 사모님이 손을 꼭 잡으시며 왜 이렇게 어린 직원이 이런 시골에 와 있냐고 안타까워하셨다.(안타까워만 하셨나보다. 시장님께 전달하지 않았는지 난 2년 넘게 인사팀에 잊혀진 채 시골에 박혀 있었다.) 남자 직원들은 또래가 없는 내가 안돼 보였는지 당구 치러 갈 때도 나를 데리고 다녔다.(저기, 저도 남자친구 만나러 가야 해서 바쁜데요..) 2006년 8월 5일 입사 일주년에는 이장님 사모님께서 사무실 벽면을 풍선 아트로 꾸며주셨다.
그곳을 떠나 다른 부서로 발령받은 후에도 여운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우리는 인사발령이 나면 보통 다음 날 갑자기 부서 이동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직원 외에는 작별 인사할 시간도 없다. 공인중개사 사장님들은 왜 갑자기 다른 데로 갔냐고 전화를 주셨다. 연세 많으시고 말씀 없으시던 이장님은 새벽시장이 끝나고 아침 내내 내가 근무하는 동사무소 사무실 앞에서 복숭아를 들고 기다리시고 계셨다. 막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요즘은 면사무소에도 여직원들이 많다. 그저 신규였고, 여직원이 흔치 않던 그 시절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던 대스타 시절이다.(나 같은 애(?)가 여자사람 많은 동사무소에서 첫 근무 맛을 봤으면 왕따가 되어 매일 울었을 수도 있다는 후문이!!!)
지금은 팀장이고, 신규 직원들을 볼 때마다 그때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고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그런데 얘네 너무 똑똑하고 잘 해서 딱히 해줄 게 없다. 신규직원을 포함하여, 근무한 지 몇 년 안 된 직원들의 찐팬이 되고 있다. 잘 못해도, 나도 그랬으니까 나보다 나으니까 이뻐해 줘야지 했는데 라떼랑~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이제는 인사철마다 새로 만나는 신규 직원들이 나의 대스타. 나는 팬이자 관객. 조용히 있어야 할 때, 함께 춤춰야 할 때, 손뼉 칠 때가 언제인지 아는 관객 매너를 갖추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