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차이는 언제쯤 모두가 알게 될까?

질문 11, 강준휘의 <Layerd works>에서.

by per se

20260321-20260412

워킹위드프렌드


전시를 다니다 보면 미술관이나 갤러리마다 관람객의 연령대가 확연히 갈리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이 많을 때는 작품을 느긋하게 보기 힘든 대신 적당히 껴서 보기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힙한 차림을 한 아주 젊은 관람객들이 인증숏을 쉴 새 없이 찍는 곳에서는 아무리 내부가 한가해도 마음이 조급해져 숨소리도 내지 않고 보고 나올 때가 많다. 물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줄 알면서도 혼자 신경 쓰느라 정신없는, 내향인의 맞춤 관람 모드일 뿐.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이곳 워킹위드프렌드 역시 그런 갤러리 중 하나인데, 상대적으로 재기 발랄한 감각을 가진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많아서인지 관람객의 연령층도 젊다. 젊지 않은 듯한 분들도 사실은 나와는 다른 세계- ‘그들만의 어떤 리그’에 계신 분들인 듯한 사람들이 많이 들른다. 작지만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을 하는 곳이기 아래층의 작은 바에 머물며 커피나 가벼운 주류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은 그래서 가끔, 전시가 좋아 보여도 가려서 가게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가게 되는 때는 당연히, 꼭 눈으로 보고 싶을 때다. 이번 전시가 그랬다. 얼핏 보면 그저 그런 어떤 일러스트레이터의 전시 같은데,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몇 컷만으로도 사로잡는 디테일이 궁금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작가에 대한 소개를 볼 수 있는데, 작품을 바라보는 데에 중요한 팁을 제공한다.


강준휘(b.1996)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EIM이다. 디지털 드로잉을 출발점으로 이미지가 생성되고 변형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레이어와 물리적 흔적을 연구한다. 일반적인 미술 입시 교육을 거치지 않고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오랫동안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를 제작해 왔다. (중략) 최근 그의 작업은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에서 벗어나 물리적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우연성과 흔적에 주목한다. 작가는 디지털 드로잉으로서 시작된 이미지를 시아노타입 인화 과정을 통해 종이로 옮기고, 그 위에 잉크, 연필, 필름, 캔버스, 벽화 등 다양한 재료를 개입시킨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미지는 하나의 원본이 아니라 여러 시간과 조건이 겹쳐진 레이어로 남게 된다.


전시 일부 작품들. 인물의 실루엣 내부를 채우는 푸른 색감이 붉은 벽면과 대조를 이루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보통 미술을 전공하고 오래도록 아날로그의 실물 미술 작업을 펼쳐오던 작가가 아이패드 드로잉 등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는 많이 보았으나, 이처럼 디지털 드로잉을 주로 다뤄오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실물로 산출해 내는 작가는 거의 보지 못한 기억이다. 단순한 프린팅이 아니라 시아노타입(빛과 특수 감광액만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고전 사진 인화 방식으로, 결과물이 푸른색으로 나타나는 청사진이 됨)으로 프린트하면서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 되는데, 특히 인물의 내부가 푸르게 채워진 작품들은 어느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보이는 인물들 각각의 서사가 색채로 설명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암실처럼 붉은 조명으로 빨려들어가듯 들어가 감상할 수 있는 공간. 작가 노트의 코멘트와 낙서 비슷한 이야기들,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있다.

2층에 올라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유리창 전면 작품이 눈을 사로잡지만,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처럼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작은 별도 공간이었다. 이 갤러리에서 종종 이 공간에 강한 색을 써서 연출하는 것을 보았기에 이 섹션이 전시된 작품을 위해 의도적으로 색을 붉은색으로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암실은 말 그대로 외부의 빛이 차단된 방이다. 이곳에는 그 붉은 방의 의도와 어울리는, 작가의 사소한 일기와 스케치 등을 담은 노트들을 전시해 두었다. 외부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작가가 일군 시간의 흔적들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의 노트들이 그렇듯이 대단한 내용들이 담긴 것은 아니다. 다음 전시를 앞두고 갖는 부담감, 다음 작업은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부터, 오늘은 동료 누가 왔다 갔다는 기록, 정리되지 않는 상념들을 담은 소박한 노트들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꽤 재미있고 볼만해서,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도 꽤 길었지만 이 안에서 이 노트들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오랜 시간 읽는 이들도 꽤 많았다. 사실은, 이런 젊은 작가들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 어디서 본 것,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 형용할 수 없는 느낌만으로 작업을 하는데 그것이 수요 혹은 인맥과 맞아떨어져 주목받는 젊은 작가는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이 공간을 유심히 보고 나면, 아무리 그런 작가라하더라도 누군가의 주목에 닿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이 노트들 위의 천장으로는 현상액 위로 떠오른 인화지처럼, 작품들의 정면이 관람객을 향하도록 걸려 있었다. 마치 이 노트들을 현상액 삼아 제 형태와 빛을 갖게 된 결과물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는 긴 시간을 견딘 사람이 내놓는 것들은 꼭 예술 작품이 아니더라도 아름답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조각조각의 드로잉과 작품들이 레이어를 이룬다. 대가의 개인전이 주는 감동도 좋지만, 젊은 작가의 고민과 헌신을 보는 것만한 즐거움도 없다.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와 지나쳤던 드로잉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작품에 대한 자기 점검이 깨알 같은 코멘트로 적혀 있다. 누가 보아도 보이는 정답을 향해 수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맞는 방향인지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방법 몇 가지 중 최선의 하나가 이것뿐이라서 해보는 건 어렵다. 심지어 관객은 그 차이를 모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알기 때문에, 내가 안 할 수가 없어서 할 뿐이다. 나만 아는 그 차이가 모두가 알게 되는 차이가 되고 특별함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무엇이 그 순간을 만들까. 혹은 그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나는, 혹은 예술가들은, 억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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