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산책길을 나섰다. 남양주에 있는 오남 호수공원인데 예전에는 오남 저수지였는데 공원화 작업을 하면서 호수공원으로 재탄생된 곳이다.
방문한 날은 9월의 초순이라 계절적으로 초가을이라 할 수 있다. 낮에는 뜨거운 날이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더러는 쌀쌀한 기운의 영향으로 옷을 선택해서 입기 까다로운 날씨이다.
반소매를 입자니 약간 추운 것 같고, 긴 옷을 입자니 덥고, 여러 가지로 애매한 점도 있긴 하지만 선선하고 시원한 날씨는 반갑다, 거기에 높고 푸른 하늘,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얀색의 구름을 보고 있자면 내 마음도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희망과 기쁨이 눈앞에 두둥실 떠다니는 착각이 든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반바지를 입고 반소매 티셔츠를 걸치고 가기로 하였다. 사실 원래 목적이 산책은 아니었고 근처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잠깐 주변을 보고 올 계획이었다. 날씨가 좋아 일 끝나고 집에 가기가 아쉬운 모처럼의 맑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산책하기로 결정을 선택한 까닭으로 운동화가 아닌 샌들을 신고 걸어야만 하였다. 오남 호수공원의 전체 둘레길의 거리는 3km 조금 넘는 거리라 부담 없이 산책할 수 있다.
거기에 나무데크길이라 유모차도 다닐 수 있는 평평한 길이라 무계획 속에 어쩌다 산책을 강행한 결과이지만 평소 걷기 운동을 좋아하기에 부담 없는 거리에 잘 다녀왔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집으로 갔으면 어쩔뻔했어?
호수를 끼고 나무데크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길은 걷기도 편했지만 호수를 보면서 걷는 내내 '그냥 집으로 갔으면 어쩔뻔했어? '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의 모습에 마음이 편안함과 만족감이 컸다. 아마 집에 가서도 미련이 남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 조금만 시간 내서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올 걸?' 하면서 말이다. 사람도 많지 않아 한적하고 조용하고 사람들에 떠밀려 천천히 걸을 수 없었던 예전을 생각하면 여유로움 그 자체의 시간이었다. 규모도 크지 않고 작은 편이어서 익숙한 느낌이고 편안하다.
호수공원 둘레길을 걸으며 시원한 바람과, 호수의 잔잔한 물결, 하늘, 구름을 보며 눈으로, 귀로, 냄새로 마음껏 초가을을 만났다.
여름 내내 꽃을 피웠던 꽃들은 시들어가고 색상도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은 아름답기만 하다.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알게 모르게 흘러가고 있다.
산책을 걷는 내내 보이는 가을의 모습은 다양하다. 다양하게 존재하는 식물의 변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다. 밤나무에 귀엽게 조그마하게 밤이 매달려있고, 도토리도 열릴 준비를 하고 있다.
호수공원뿐이 아니라 들과 산에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는 늘 친근하다. 예전에 여뀌를 모델로 하여 손수건에 한 땀 한 땀 야생화 자수를 놓은 적이 있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너무 흔해서,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모르고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던 일상이 많았던 지난날이다. 가을이 익어가면서 나의 마음도 편하게 익어가길 소망한다. 너무나 고요하여 일상이 멈춰버린 듯한 착각이 드는 초가을의 오후, 가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