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시선
대학에 합격하며 서대문 고시원에서 28만 원을 내고 자취를 시작했다. 2009년의 물가를 반영하더라도 매우 저렴한 방이었고, 그 가격에 걸맞게 누워서 팔을 뻗을 수 없는 1.5평짜리 좁은 방이었다. 컴퓨터는 당연히 없었고, 스마트폰의 보급은 그로부터 몇 년이나 지난 뒤에 이뤄졌다. 학교가 끝나면 할 게 없어서 집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책 보기 최적의 장소였고 교수님이 추천해 준 책은 너무 많았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으면 고전을 읽으라는 말이 있었는데, 스무 살의 나에게 고전은 정말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문법이 현대와 맞지 않거나 문장이 적절하게 끊어지지 않아 수십 줄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 당시 어려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독자의 탓이었고 배경 지식을 더 쌓아야 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도망쳐 현대 문학 단편집을 찾아 읽었다. 운 좋게도 우연히 고른 책이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였는데 덕분에 아직까지 독서라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베스트셀러는 빨리 낡는다. 하물며 베스트셀러가 아닌 글은 더 빨리 낡는다. 고전은 시대가 변함으로써 낡은 케이스라면 저자가 변화함으로써 낡는 글도 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논고가 대표적인 예시가 되는데, 책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생각하니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허상이라는 것이다. 약간 쿨병 걸린듯한 이 말은 살롱에서 대유행을 하며 비트겐슈타인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살롱에서 스타가 만들어지고 있을 때 저자는 고향에 내려가서 지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아직도 논고로 회자되니 그는 논고를 낸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가 비트겐슈타인은 아니니 우리의 글은 더 빨리 낡을 것이다. 나중에 자녀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글을 쓰기로 했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 활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마치 브런치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작가의 삶을 엿보듯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며 연재를 시작한다.
아내가 첫 주제를 글에 대해서 쓰자고 했을 때, 떠오른 주제가 너무 다양했다. 어렸을 때 원고지 10장을 채우라는 교육으로 인해 길게 써야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채팅도 글인데 글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우리는 구조 잡힌 문장을 글로 인식한다는 내용. 말의 인용은 언제든지 해도 되는데, 글로 적으면 저작권이라는 형태로 보호하는 제도.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교양인이라고 생각해 주는 현상 등. 지금의 나는 글이 낡아버리는 걸 경계하고 있어서인지 이 주제를 가장 앞으로 꺼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