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시선
이웃에 대해서
이웃에 관해서 항상 인용되는 글이 있다.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길을 가다 강도를 당했는데, 다른 사람은 다 나를 피했는데 사마리아인만 나를 도왔으니 사마리아인이 나의 이웃이라는 내용이다. 이 우화에 따르면 나를 피한 사람은 나의 이웃이 아니고, 나를 도와준 사람은 나의 이웃이다. 성경은 잘 모르지만 아마 어떤 비유일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면 현실은 내가 느끼는 고마움과 별개로 나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사람이 이웃이기 때문이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층간 소음을 만드는 사람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도 내 이웃이다. 하지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으면 그들은 이웃이라기보다는 npc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이웃을 나름대로 정의해보면 나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불청객 이웃을 피하려면
사람이 변하려면 만나는 사람과 하루에 쓰는 시간의 사용처를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이웃이야말로 나랑 만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좋은 이웃을 곁에 많이 둬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소득 수준이 높은 동네일수록 교양있는 이웃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더해져 수십억하는 아파트로 이사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쳤었다.
좋은 이웃을 만들려면
나는 같은 아파트 주민이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목례를 하곤 하는데, 이 때문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분이 먼저 반갑게 인사 해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습관처럼 하던 거라 누군지 기억도 못하면서 안녕하세요~ 하면서 지나치게 된다. 이들은 순간의 감사함을 제외하면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이웃은 아닐 것이다. 좋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이웃이란 주민센터에서 하는 수업을 듣는다거나 봉사활동에 나간다거나, 운동이나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등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행동의 결과일 것이다.
나가는 글
아마 우리 부부는 수동적으로 생겨나는 유치원 학부모 모임 같은 곳에 참여하면서 그저 운에 따라 이웃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이때 주변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우리의 주관을 가지고 있거나, 좋은 이웃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텐데 우리 부부가 이웃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 많이 이야기해보고 노력해봐야 하는 주제인데, 아직은 여러모로 어렵게 느껴져서 주관을 갖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 같다.